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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별연두 Mar 12. 2022

지나간 나날을 뒤로한 채 나아가렵니다

‘서른의 규칙(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을 읽고


저는 타인과의 대화가 늘 어렵습니다. 대화가 잘 끝이나도 이후에 마음이 불편한지라, 대화가 꼬여버린 날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부드럽게 지나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상대의 미소가 미덥지 못합니다. ‘뭔가 불편해도 예의상 웃은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대화가 불통으로 끝났다면, 그 원인이 ‘의견차가 있을 수도 있지’ 에 머물지 못하고  ‘소통능력의 문제가 있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 일 수 입니다.


@unsplash

저는 저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습니다. 겉보기엔 큰 문제가 없는 관계들 속에서조차 저는 항상 저의 누추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주 가끔씩 그것을 알아차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얘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지?” 라며 “진짜 본심이야? 아니면 사전 연막이야?” 라는 반응을 보이실 때도 있습니다. 제 마음을 열어보일 수도 없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전 진심으로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죠.


이게 저의 과거였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럴 때가 있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그런 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괜찮아. 그건 너의 주관적 오해일 뿐이야’ 라고요.




@unsplash


저는 늘 혼나는 아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에 한 번이상 혼나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 말투나 걸음걸이부터 젓가락질을 포함 매 순간 고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없었달까요? 부모님이 맞벌이라 하루의 대부분을 놀이방(탁아소의 일종)에서 보내던 때에도 저는 부모님께 매일같이 혼이 났어요. 혼났던 이유를 딱 한 가지로 설명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성향과 제 성향이 다름에서 오는 마찰들, 맞벌이 부부의 고단함 등등. 거기에 태어나길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저는 그 안에서 상처입기 쉬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벌의 강도는 강해졌고 저는 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심했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습니다.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 p34

과거의 저는 지혜로운 사람과 거리가 아주 먼 어른이었습니다. 유년시절 불안했던 가정환경과 엄마의 자살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어른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어른이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외부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어른인 척 꾸며내었죠. 그렇게 어른이라는 틀에 갇혀 성장하지 못한 아이의 상처는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 중략…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픔을 살펴보고, 어루만져주고, 나에게 필요한 마음 근육들은 무엇인지, 그것을 키우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스스로의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에게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그것의 계기는 명상이었습니다. 이후 명상 중에서도 자비명상이 저에게 많은 위안이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엔 그것이 장점이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자아 성찰을 할 줄아는 아이는 칭찬받았습니다. 욕구를 누를 줄 아는 아이는 표면적으론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키우기(교육시키기) 수월한 앙이였습니다. 저희 엄만 늘 이런 말을 하셨어요. “응 첫째(지금 글을 쓰는 저에요) 는 늘 잘 지내지.”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을 비롯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저는 세상만사를 물흐르듯 자연스레 살아가는 사람처럼 대해졌어요.


저는 늘 ‘스스로를 성장시킬 줄 아는 성격이 유순한 사람’ 이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 대학입학, 취업, 결혼의 문턱을 쉽게 넘어설 수 있게 해줬던 걸까요? 늘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늘 문제가 많았던 저의 그 심적 배경은 이러했습니다.


‘일이 틀어졌다면 다 네가 잘못한거야’

‘모든 건 너 하기 나름이야’

‘걔가 널 미워한다면 너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거야’

‘설사 진짜 상대/상황에 잘못이 있었다한달 네가 그걸 컨트롤 할 능력이 없었던 것도 죄야.


@unsplash

 

어떤 상황이라 해도 그 상황을 마주한 사람의 반응에 따라 상황이 해결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책은 시간이 갈수록 도가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휴직직전 팀장님께 이렇게 말을 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제가 모든 일을 망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과한 생각의 전개가 우습기까지 하지만 그 당시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제 스스로의 가치는 점점 하락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 세상에 조금도 도움이 안되는 녀석이 밥만 축낸다는 생각이 저를 옭죄었어요.


저의 습관적 자책과 가면 갈수록 깊어졌던 제 존재에 대한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이 책의 작가처럼 내가 나 자신에게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께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어요. 내가 나 스스로를 어찌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를 말입니다. 이 세상 모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이후 내 아기를 바라보듯 나의 내면아이를 바라보고, 내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나의 내면아이에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많이 불안하고 두려웠구나.

 넌 너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늘 성장할 필요도 없어.

 넌 그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야.

 너는 네 아기의 엄마라는 사실만으로도 쓸모없지 않아.

 슬프고 두렵고 지쳐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네 자신을 놓지 않았던 너는 참 멋진 사람이야.”

 

그때부터 저를 괴롭히던 그 가치없는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을 주관적으로 왜곡시켜 바라보거나 세상이 왜곡된 원인이 나 자신이라는 극단적 감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행복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인생에서 느끼는 행복은 결코 운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당신의 사소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물이자 선물입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마음껏 뻔뻔해지세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칭찬을 받아도 마땅한 사람입니다. p123


제 자신을 사랑하자 잃어버렸던 자존감, 자긍심 등등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 멋진 사람이란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아침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읊조렸습니다.


@unsplash

 

그만 짊어져도 괜찮아.

그동안 상처를 외면해왔던 것임을 알아차린 그때, 처음으로 나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순간을 짊어지면서 열심히 살아온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만난 나는 가엾고, 기특하고, 대견했다. 비로소 가정과 분리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p135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외면했던 상처를 마주하자 저는 비로소 부모님과 분리된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상처뿐 아니라 부모님의 상처 또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달리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로 남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unsplash

이 책은 마치 지난 제 7년간의 명상과정을 요약한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리뷰랍시고 제 이야기를 슬쩍 꺼내어 보았습니다. 공공연하게 과거 이야기를 터놓기 힘들어하는 저를 대신해서 작가가 이 세상에 소리쳐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묵혔는지 7년의 명상이 필요했던 그 이야기. 그만큼 제 몸과 마음을 지배했던 이야기라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수정빛 작가님의 ‘서른이지만 괜찮아’를 리뷰하며 조금이나마 그 회한을 풀어보았습니다.




번외1. 제가  과거를 속시원히 풀어낼  없었던 이유.


해리포터에서 사람들은 볼드모트를 볼드모트라 부르지 못합니다. 해리를 볼드모트를 볼드모트라고 당당히 부르며 자신의 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그로써 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적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과거를 집약할 수 있는 한 단어를 (명상으로 이 단어를 인정하게 되었고 저는 과거에서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저의 적을 명명하는 것과는 다르기에 저는 공적으로 설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절대악으로 표현되었던 볼드모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상처를 한 단어로 마주하며 제 자신을 치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저는 제 상처뿐 아니라 부모님의 상처 또한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가여웠고 동시에 부모님이 가여워서 깊은 애도의 시간을 거쳐야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저와  부모님의 과거를 낱낱이 드러낼  없는 이유입니다.


번외2. 이번주도 제 유툽 공유합니다^^

https://youtu.be/hYWhQ9ZYmq4

https://youtu.be/lYvlJ2g8ROg

https://youtu.be/pvM-pEee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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