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둥지는 어디 있을까
아무리 새라고 해도 반년마다 수 주를 날아서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남쪽 바다에서 만난 어떤 부지런한 기러기는, 자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가면서 반년 후 다시 북쪽으로 올라올 비행 길을 계획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조금 과한 경우이기는 한데, 그 말을 들은 나와 동료 가마우지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거들었다. 아마 적지 않은 철새들이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두 집 살림의 운명을 두 날개로 받아들이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정착하는 삶에 대한 바람을 품고 있다.
그리고 최근 많은 철새들이 정착의 희망을 실현하고 있다. 철새들은 몇 곳 남지 않은 철새 도래지에서 각지의 소식과 바람 정보를 공유하는데, 십수 년 전부터 날씨가 따뜻해져서 원래 여름에만 지냈던 곳도 겨울에 지낼만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철새 안에서는 이를 ‘정착 논쟁’이라고 한다. 종마다, 그리고 새마다 입장이 조금 다른데, 가마우지는 대체로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그냥 눌러앉을래! 며칠을 날아서 허구한 날 둥지 만드는 것도 지겨워!”
후투티는 떠돌이 생활이 지겹다며 역정을 냈다. 이미 살만한 곳도 눈여겨봤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 주변 야산에 살면 훨씬 살만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두루미와 따오기는 조심스러웠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두루미였다.
“날씨가 따뜻해진 것은 소조小鳥도 동의하오. 하지만 그러다가 순식간에 얼어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오. 한반도는 곧잘 북쪽 공기가 내려와서 언제든지 혹한이 몰아칠 수 있단 말이오.”
“그래, 땅도 얼어서 논에서 볍씨 주워 먹기도 힘들 텐데…… 배고파서 사람들 사는 곳으로 내려왔다가 고양이한테 잡아먹히면 어떻게 해……?”
따오기도 말을 보탰다. 두루미의 말보다 따오기의 말이 후투티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듯 부리를 저으며 말했다.
“몰라! 흰뺨검둥오리는 강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잘만 지내던데, 나라고 산에서 못 지낼게 뭐람!”
이런 식의 이야기가 매 이동시기마다 반복되었고, 논쟁은 점점 정착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니 굳이 이동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우리도 결국 정착을 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친 새들 중 하나였다.
먼저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호수와 큰 강가였다. 정착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협할 만한 동물이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듯한 건물 사이에 있는 호수에 물고기들이 갇혀 있어 사냥도 쉬웠다. 식구는 하나 둘 늘었다. 정착에 합류하는 가마우지도 점점 더 늘어났다.
하지만 안락한 정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우리 둥지를 부수고 사냥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는 사람은 먼 옛날에야 우리를 잡아 낚시에나 썼었지만 그래도 굳이 잡아 죽이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먹으려고 사냥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많은 가족을 잃었고 나는 친구와 함께 겨우 빠져나와 한강에 이르렀다.
그나마 한강 생활은 평화로웠다. 그곳에서 책 읽는 갈매기와 친구를 한 적이 있었다. …… 책 읽는 새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다. 그 녀석은 나에게 종종 나는 게 그렇게 중요한지 물었다. 그러면 나는 보통
“나야 모르지?”
라고 답했다. 새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가마우지는 나는 것보다 헤엄이 더 편하다. 물가에 사는 다른 새들이 물을 좋아하는 것보다 물속에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 이 차이인 것 같다. 물가에 사는 새들은 ‘물가’에 산다. 하지만 우리는 ‘물속’에 산다. 수면에 앉을 때도 다른 새들은 배만 살짝 가라앉고 날개는 수면 위에 있지만 우리는 몸 전체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머리만 집어넣으면 바로 헤엄쳐 빠르게 잠수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한강의 갈매기들은 우리가 사라졌다며 깜짝 놀라고는 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는 정말 정말 아주 먼 곳 어딘가에 날지 못하고 수영만 할 줄 아는 새가 있다고 한다. 말이 되나? 새가 못난다고? 우리도 물속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지만 새는 결국 나는 법을 아는 동물이다. 날지 못하고 수영만 하는 새라니,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몇 주 전 나는 오리를 따라 작은 개천으로 흘러왔다. 청둥오리는 종종 자신이 사는 개천에서 한강으로 놀러 와 나와 담소를 나누는데 얼마 전 들려준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점점 물고기들이 커져서 무서워 죽겠어. 끝도 없이 몸집이 불어나 이제는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에 올라와서 지들도 헤엄치기 힘들어할 정도라니까! 게다가 이제는 백로랑 왜가리도 잡아먹지 못할 정도로 커져서 아주 살판났지, 뭐. 얼마 전에는 물고기가 새끼 오리 한 마리를 물고 데려가 버려서 결국 찾지도 못했어.”
어떤 가마우지가 이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큼지막한 물고기가 헤엄치기 힘들 만큼 얕은 물에 있다니, 이건 부리에 떠먹여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오리에게 그가 사는 개천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천에는 늘 사람이 많고, 심지어 가까이 있다는 점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오리도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으니…… 나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는 한강 어귀에서 개천은 날아서 10분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얇고 얕은 물줄기는 새끼 가마우지가 수영 연습하기 알맞은 수준으로 정말 앙증맞은 크기였다. 수면 밑으로 언뜻 보이는 검은 그림자들은 오리가 말했던 물고기들이었다. 물고기는 생각보다 정말 컸다. 어떤 물고기는 내가 삼키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대부분은 한 부리에 삼키기 알맞아 보였다.
우리는 오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수면을 꽁지깃으로 긁으며 내려가 다리와 배면으로 물에 빠지듯이 수면에 앉았다. 물 위에 올라타듯 내려온 오리와는 전혀 다른 물보라를 일으키는 나에게 오리들은 관심을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모여 꽥꽥거리며 한 마디씩 떠들었다. 특히 새끼 오리들이 낯선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왔다.
“요 녀석들, 깃털만 한 것이 아주 한 부리 크기구나! 하하하.”
순간 오리들이 조용해졌다. 새끼 오리는 사색이 되어 엄마 뒤로 도망쳤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아이들을 잡아먹을 생각인가요?”
엄마 오리가 새끼들을 끌어안으며 나에게 따져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새끼 오리들이 귀엽다고….”
“아, 이 친구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러 왔습니다! 이 부리 좀 보세요! 한도 끝도 없이 벌어진다고요!”
친구가 분위기를 끌어준 덕분에 오해에서 풀어질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오리들이 물고기를 많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확실히 이 개천에 저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천 생활은 편안했다. 이렇게 얕은 물에서 물고기를 쉽게 잡아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깊이 잠수하는 가마우지가 고기를 잡는다’고 했는데, 옛말이 꼭 맞지는 않는가 보다. 오리들의 둥지가 모인 곳 주변에 큰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먹자 오리들은 나를 독수리처럼 우러러보기도 했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막역하게 지낸다. 가족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좋다. 한강같이 트인 맛은 없지만, 오히려 단란하고 안락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오리들 사이에서 잘 수는 없었다. 가까운 곳에 내 나름의 둥지가 필요했다. 우리는 원래 높고 가파른 곳에 둥지를 만든다. 개천의 몇 안 되는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런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개천을 따라 날며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개천을 둘러보며 알게 된 점은 수시로 사람들이 물줄기 뒤엎는다는 것이었다. 큰 기계를 데리고 강바닥을 긁거나 흙을 퍼 날랐다. 돌을 가져와 놓기도 하고, 놓았던 돌을 다시 끄집어내 도로 가져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맨날 뭐 하는 거야?”
내 질문에 오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원래 흙놀이를 좋아해. 저렇게 한참 들쑤시다 며칠 후에 돌아가. 그때만 가까이 안 가면 돼.”
나는 사람의 흙놀이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종종 너구리가 강변에서 땅 파는 것을 보았기에 그것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커다란 기계에 둥지가 엎어지면 어떻게 하지? 이번만큼은 절벽 같은 곳을 찾아야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곳은 없었다. 다리 밑은 비둘기들이 선점했고 그 쾌쾌한 냄새도 싫었다.
어느 날, 문득 느티나무가 눈에 띄었다. 헤엄치다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잔뜩 늘어진 느티나무의 가지가 낚시꾼의 낚싯줄 같았다. 할머니랑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는 곳에 숨어있다가 낚시꾼이 뿌린 먹이에 모여든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했다. 낚싯바늘만 잘 피한다면 끼니 걱정 없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생각을 하니 마치 느티나무의 가지가 많은 먹이를 가져다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정도 나무면 사람들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날 강가를 오가며 가지를 모아 느티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둥지를 만드니 뿌듯하고 이 개천이 드디어 내 집이 된 것 같았다. 이 정도 높이면 비둘기들도 못 올라온다. 참새도 얼씬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오래오래 살아야지. 며칠 전 친해진 쇠백로도 초대해야겠다. 한강까지 올라오면서 헤어졌던 가족들이 생각났지만, 이젠 새로운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에 조금은 덜 외로운 마음이었다.
“드르륵! 삐- 삐- 삐- 삐-“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땅이 울리고 나무가 흔들렸다. 나는 놀라서 정신도 미처 추리지 못한 채 날아올라 바닥을 내려보았다. 큰 기계 몇 개가 느티나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긴 주둥이를 가진 기계가 느티나무 주변을 파고 있었고, 그 옆에는 거대한 둥지 모양의 기계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느티나무는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곧 기우뚱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어제 만든 둥지가 들썩이더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바닥으로 후두득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