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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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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May 26. 2024

갈매기

한강에 살아도 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
  그러다가 챙이 사라지는 날이 왔다. 그는 갈매기 모두에게 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챙은 배우고 익히기를 중단하지 말라고, 모든 삶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이치를 더 많이 이해하려고 계속 애쓰라고 갈매기들을 독려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깃털이 점점 더 환해지더니, 마침내 너무 눈부셔서 어느 갈매기도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
 “조나단, 계속 사랑을 연마하게”
 ……
 -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공경희 옮김, 2020, 나무옆의자 -



 “…… 개펄에 부리 박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사람들은 한강에 놀러 나와 많은 것을 두고 간다. 돗자리야 흔하고 핸드폰, 과자 부스러기, 간이 텐트의 껍데기, 모자, 강아지나 고양이(언젠가 한 번은 족제비같이 생긴 동물도 두고 가던데), 커피잔, 김밥, 공 등등. 이 중에서 유용한 것이 있다면 당장 둥지 만드는 것이 급한 갈매기들이 앞다투어 가져간다. 물론, 대부분은 쓰레기다. 그나마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되도록 물고 가지도 말라는 것이 부모님들께서 새끼들에게 늘 가르치는 지침이다. 예전에 사람이 버리고 간 노끈을 가지고 물가에서 장난치다 다리가 엉기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대로 돌아오지 못한 갈매기가 있더라나…


 쓰레기 더미에서도 단연 인기가 없는 것은 책이다. 책 읽는 갈매기를 본 적 있는가? 책은 무겁고 먹지도 못하는 데다 금방 젖어 둥지 재료로 쓰기도 애매하다. 마포대교 근방에 사는 갈매기가 말하길 책 위에 앉아 있으면 나름 빤빤해서 편하다고 했지만, 그 이상의 유용함을 찾은 갈매기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책을 읽고 있다.


 지난주였다. 어떤 남자가 나무 밑에 누워 책을 읽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순식간에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치듯 비를 피하다 물건 몇 개를 두고 갔었다. 마침, 그 근처에 있던 내가 제일 먼저 그 자리를 살폈다. 『갈매기의 꿈』. 다른 책이었다면 진작에 관심도 안 가졌겠지만, 갈매기의 꿈이라고? 표지에 그려진 몇 마리 갈매기와 눈이 마주친 나는 꽤 흥미가 생겨 내 둥지로 가져와 심심하면 몇 장씩 읽고 있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한강에 살던 갈매기는 아니다. 서쪽 바다에서 살던 아빠는 거대한 기계가 둥지를 뒤엎고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것을 견디지 못해 살 곳을 찾다가 한강대교까지 날아왔다고 했다. 거의 모든 바닷가 갈매기들은 거대한 기계와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에 적응했지만, 큰 욕심도 없고 시끄러운 것이 너무너무 싫었던 아빠는 여기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늘 나에게 여기가 천국이라고, 천적도 없고 배고프면 쓰레기 뭉치 좀 뒤지면 되는 여기가 바다보다 백 배는 더 낫다고 늘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바다’라는 것이 얼마나 넓은 물인지 가늠이 잘 안되었다. 아니, 한강도 충분히 넓지 않나? 청둥오리 따위나 노는 실개천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급강하해 한강 물로 뛰어들어도 그 어떤 갈매기도 그 바닥까지 닿아본 적이 없다. 지난봄에 결국 실개천으로 이사 갔던 가마우지도 한강 바닥까지 가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가끔 바람이 거셀 때에는 파도마저 위협적이다. 아무리 바다가 넓다고 해도 한강에 비해 얼마나 크다는 말인가?


 그런데 책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주인공(이름이… 조나단이었다)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날아도 땅에 도달했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한강도 동서로 가로지른다면 끝도 없이 물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밤섬이나 뚝섬보다도 훨씬 크고 높다란 섬이 즐비한 곳인 것만 같다. 그건 확실히 여의도에 즐비한 하늘을 찌르는 듯한 건물들하고도 다를 것이다.


 “아빠, 바다를 나는 기분은 어때?”

 “니가 웬일이냐, 그런 걸 다 물어보고.”

 “아니 그냥…”


 아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바다에서 비행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찬찬히 곱씹었다. 그리고 마치 수면 위에서 바람을 타고 활강하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바닷가보다 강가가 훨씬 조용하고 사고도 덜하기는 하지만… 진짜 고요하게 날 수 있는 곳은 해변이 까마득하게 보일 만큼 먼바다였지. 그곳에는 바람과 파도밖에 없어. 해변이 너무 시끄럽고 기계 소리가 온 정신을 흔들어 놓을 때 아빠는 종종 먼바다로 나가 바람을 맞고는 했었다. 게다가 의외로 먼바다의 파도가 더 부드럽거든. 너울거리는 기분을 즐기며 파도 위에 앉아 있다가 너무 멀리 나왔다 싶으면 돌아갔는데, 이따금 바람이 너무 거세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질 때는 차라리 아주 높이 올라가 해변을 향하는 바람을 찾아 그 바람을 타고는 했단다.”


 아빠는 좀처럼 예전의 기분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한강이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바다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그때의 추억들을 소풍 나온 사람들이 짐을 풀 듯 하나 둘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이 이야기가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넓은 바다와… 그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늘 의문이 있었다. 우리는 물가에 살고 물갈퀴도 있는데도 가마우지-아빠가 늘 친구랑 비교하지 말라고 하시기는 하지만-처럼 헤엄을 잘 치지 않는다. 잠수도 깊게 하지 않고, 큰 물고기를 한 부리에 삼키지도 못한다. 심지어 물 위에 앉는 것보다 땅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어떤 갈매기는 파도 멀미가 있어서 웬만하면 물 위에 앉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헤엄치는 것보다 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이 쭉 뻗은 날개는 이따금 한강 위를 우아하게 날아가는 중대백로나 무슨 생각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눈깔로 바닥이나 쪼는 비둘기들의 날개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는데 유용하다. 한강 다리 위를 날아오르며 건물보다 더 높이 날아오를 때면 웬만한 새들은 모두 우리 밑에 있었다. 도시와 물가에 사는 새들은 대체로 그렇게 잘 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나는 처음 『갈매기의 꿈』에서 ‘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말에서 코웃음을 쳤다. 생각해 보라, 그건 마치 똥 싸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부리를 가진 참새가 땅바닥에 떨어진 강냉이를 쪼는 것이 자연스럽고, 둥근 몸을 가진 지렁이가 잔디 위를 기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날개를 가진 동물이 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그걸 목표라고 한다니!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갈매기 적어도 내가 본 어느 새보다도 잘 나는 새다. 물갈퀴가 있으면서도 물보다 하늘에서 더 자유로운 새다. 내 머릿속에서 한 번 알을 깨고 나왔으면 제대로 날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래, 날아보자. 한 번 날아가 보는 거야.




 나는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배를 채우고 서쪽으로 날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바다까지 며칠이나 걸리는지 물어보는 것을 깜빡했지만, 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강 위를 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힘들면 다리 위 난간에서 쉬고, 강변 공원에 놓여있는 고양이 밥을 먹으면 된다. 아니, 이렇게 좋은 한강에서 굳이 떠나 살 이유가 뭐지? 개천이든 바다든 한강이 아닌 곳에서 사는 새들은 분명 고생을 좋아하는 새들일 것이다.


 생각보다 바다는 멀리 있었었고, 나는 두어 번 한강 난간에 앉아 쉬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난간에 뭘 얹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난간에 올라가기 힘들게 방해했다. 아, 이것 때문인 것 같다. 한강에 사는 여느 갈매기들이라면 한강에서 비행을 시도하는 사람을 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에 성공한 사람을 봤다는 갈매기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갈매기들은 이따금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날아오르려고 시도했다면 아예 못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난간에서 뛰는 것이 아닐 텐데 왜 어떤 사람도 성공하지 못하는 의아해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비행을 시도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난간에서 날 방해한 이것들 때문이었다.


 이틀 정도 날아가니 슬슬 짠 내가 나기 시작했다. 바다인 것 같다. 바람의 느낌도 뭔가 다르다. 공기가 내 몸과 날개에 감기기 시작하며 뭔가 끈덕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쪽으로 향할수록 건물이 낮아져 바람을 방해하지 않아 바람의 흐름이 일관되었다. 나는 최대한 날갯짓을 하지 않고 바람 위에 몸을 얹어 부드럽게 나아갔다. 이때가 해질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태양이 밝아지더니 태양 아래 일렁이는 태양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보였다.


 아…! 바다다!!




 바다는 넓은 물이 아니었다. 넓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 가늠이 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바다는 그런 의미에서 넓은 물이 아니었다. 바다는 ‘끊임없는’ 물이었다.


 바다에서는 뭐든지 컸다. 선착장도 거대했고, 배도 한강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는 그 소리마저도 웅장했다. 이 정도 소리는 장마철 한강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평소 한강의 파도는 파도라기보다는 출렁거림에 가까웠는데 바다의 파도는 부리도 부술 수 있을 것처럼 강하고 거대했다. 나는 바다의 모든 규모에 놀라 날갯짓하는 법을 잊었고, 이내 바다의 강한 바람에 순간 휘청거렸다.


 바다의 바람은 강의 바람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나는 감상을 뒤로 미루고 바람의 질감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후 나는 아빠의 말처럼 먼바다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렁거리는 태양을 향해 나아갔다. 바람이 이따금 정말 강하게 몰아쳐 몇 번 균형을 잃을 뻔하여, 만약 날개를 헛디뎌 고꾸라지더라도 파도에 꼬라박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조금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날았다.


 아무리 날아도 땅이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높이 올라도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금방 해가 졌는데, 말 그대로 부화 직전 알 속에서 느꼈던 암흑과 같은 밤이 찾아왔다. 한강은 결코 어두운 시간이 없다. 늘 빛이 환한 곳이다. 하지만 바다는 해가 지자마자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깜깜했다. 순간 나는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 얼른 날아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불빛이 반짝이는 해변이 보였다. 나는 날개를 틀어 해변을 향했다. 얼마나 멀리 나온 건지 가도 가도 해변의 불빛이 커지지 않았다. 나는 해변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고, 그때야 아빠가 이야기했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적막함. 바람 소리만이 내가 날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신호였다. 가만히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짝 눈을 감았다. 자유로웠다. 아, 이래서 조나단은 자유로움을 더없이 만끽하기 위해 나는 것을 연습했구나. 그래서 갈매기는 물갈퀴가 있으면서도 물 위에 떠 있는 것보다 날아오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구나. 드넓은 바다… 이곳에서 내가 오롯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유, 그뿐이구나…




 나는 해안에 머물며 바다에 적응했다. 해변에 사는 갈매기 친구들을 사귀고, 바다에서 필요한 비행 기술을 익혔다. 처음 보는 물고기를 맛보고, 바다에서 가면 안 되는 장소와 마주치면 안 되는 기계들에 대해 배웠다.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즐거운 표정이었는데 이따금 던져주는 새우 맛 나는 과자가 별미였다.


 나는 비행과 바다에 푹 빠졌다. 바다를 날 때마다, 그리고 먼바다에서 고요함을 즐길 때마다 이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며칠 후, 남쪽에서 한 갈매기가 날아왔다. 그는 정말 먼바다에서 왔다고 했다. 이제는 비행보다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사람이 많은 동네를 찾아 날아왔다고 했다.


 그와 친해지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갈매기는 수 주 동안 오른편에 육지를 끼고 날아오면서, 해변마다 다른 물고기들을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가 몇 년 동안 살던 남쪽의 섬은 형형색색인 높은 절벽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비행하는 법을 연습하기 더없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 섬의 갈매기들은 다들 비행의 고수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남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에서 바다까지 나와봤는데, 남쪽 바다로 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까? 상당히 먼 것 같지만 그가 했던 것처럼 한 편으로 육지를 끼고 가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준비 후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간에 맞춰 태양을 바라보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비행의 고수들을 만나 기술을 익히면 언젠가 바다의 끝에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는 어떤 물고기와 갈매기가 있을까?


 나는 바닷바람을 가르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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