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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ug 02. 2021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우리는 어차피 '내 이야기' 밖에 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화자가 결국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내가 스스로를 아는 만큼 누군가에 대해서 잘 안다면 나에 관한 이야기를 삼가리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므로, 가장 잘 아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나는 어떤 작가든지 남의 삶에 대해서만 쓰지 말고 소박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지에서 고향의 친지에게 쓰는 그런 글 말이다. 자신이 진솔한 삶을 살았다면 그 이야기는 제삼자에게 새로운 경험이 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월든 중




 스크롤을 내려 글을 읽으시기 전에 소로가 한 말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스스로에게 '내가 가장 최근에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언제인가.' 질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셨나요? 가장 최근에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언제인가요?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 뉴스 기사, SNS, 각종 에세이, 다양한 분야의 무용담들이 자신을 읽어달라며 아우성칩니다. 대부분은 소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남의 삶'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술 더 떠서, 금세 휘발되어 이 순간만 지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곱씹을 거리가 없기에 많은 이야기는 읽는 이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이야기는 많은데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각종 에세이나 무용담들이 다양하니까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호소하거나 직접적으로 감정을 가르치는 글입니다. '일반의 감정'을 이야기하며, 정제시킨 영양제처럼 읽는 이에게 감정을 복용하게 합니다. 이야기를 읽고 곱씹어 소화시켜, 우리를 성장시킬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내 감정', '내 생각' 즉, '내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SNS에 '내 감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이 너무 많아져 문제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SNS에 '내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SNS는 단편적인 감정과 사실만 올라가고 '서사'와 '맥락'이 없습니다. 또한, '전시'할만한 감정과 사실만 골라내 노출시킵니다. SNS는 온전히 '내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사회적 시선으로 스스로를 검열하여 자신의 극히 일부만 공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SNS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전시'이기에 읽는 이는 SNS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또, 만약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의 그럴듯한 양식을 지닌 긴 글이어야 할 것 같은 공포감에 빠집니다. 나아가 보통 긴 글이라고 하면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담론'일 가능성을 염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입니다. 조금이라도 틀릴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결국 베스트셀러, 유명한 학자, 거대한 집단의 뒤에 숨어서 '내 생각'을 그곳에서 빌려옵니다. 자꾸 인용을 하고,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수집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충분히 생각했다'고 여깁니다. 결국 여기에도 '내 이야기'에서 비롯된 '내 생각'은 없습니다.




 '내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유난히 빛나는 것만 전시하려 하고, 진솔하게 '내 생각'을 풀어낼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는 보잘것없고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내 이야기'에는 각자의 서사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진솔하게 풀어진 '내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만큼의 중요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은 휘발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이가 여전히 숨 쉬고 있고, 그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우리도 삶을 살고 있기에, '내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가 되어 까마득한 깊이를 가집니다. 나아가 그 이야기에서 배울 만한 무언가가 있을지는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읽는 이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소로도 작가들마저 결국 '내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로 자신도 마찬가지겠지요. 대문호, 선현들도 동일합니다. '내 이야기'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의 맥락 안에서 끊임없이 서사와 생각을 씹고, 다듬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남의 이야기'보다, 내가 온전히 다룰 수 있는 '내 이야기'에 대한 진솔함이 다른 이들에게 더없이 풍요로운 글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 권위와 유명세에 매몰되어 '남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을 멈추고, '내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집중하여, 자신 안에서 깊이를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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