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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Jul 31. 2021

장애가 있는 손님에게 서비스하기

'임의로 판단하는 배려'는 매우 자의적일 위험이 크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동생이 생각을 물었습니다. 시각에 제약이 있는 손님이 샤베트를 주문했는데, 그 샤베트는 먹기 전에 잔 위에 올라간 장식용 민트 잎을 제거하고, 깊이 섞어야 의도된 맛을 느낄 수 있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음료였습니다. 동생은 음료를 어떻게 내가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상사는 일단 잎을 제거하고 저어 내갈 것을 지시했으나 어떻게 서비스하는 것이 옳은 서비스인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일화를 지인들과 나누었고, 많은 분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원래 서비스대로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재밌게도 이유가 모두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3가지입니다.


 신체적 제약이 없는 사람 중심으로 설계된 모든 체계의 구조적인 접근성의 문제는 다루지 않습니다(예: 시각에 제약이 있는데 점자차림표가 없거나, 이동에 제약이 있는데 계단만 있는 경우). 서비스에 접근 가능한 신체적 제약이 있는 분들에게, 신체적 제약이 없는 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를 제공할 때 맞닥뜨릴 수 있는 고민에 한정 지어 이야기합니다.




1. '서비스 재화'의 문제 - 재화의 가치는 재화에 얽혀 있다.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샤베트의 맛이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그 외양도 중요합니다. 재료는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물론,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재화의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화의 외적인 요소들도 영향을 끼칩니다. 같은 샤베트라 해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집니다. 어디서 파느냐에도 영향을 받겠지요. 이렇듯 재화의 가치는 재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화에 얽혀있는 수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은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들을 정량화하여 결정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가치와 가격은 함께 갑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처럼 어떤 이유에서든 재화가 서비스하는 가치 중 일부를 임의로 누락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화의 가격을 낮추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재화의 가격은 재화의 가치로 결정되고, 재화의 가치는 재화에 얽혀있는 수많은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데 판매자가 재화의 가치를 임의로 탈락시켜, 같은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다른 가치의 재화를 소비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2. '서비스 효율'의 문제 - 서비스 제공자는 서비스 이용자의 욕구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는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에는 이런 판단의 순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장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일수록 '상황별 지침'이 정해져 있지만, 이 지침 역시 예측 가능한 선에서 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행동양식일 뿐입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욕구를 판단하는 일은 특히 어렵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서비스 제공자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서비스하기를 바라는지 서비스 이용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습니다.


 묻는 것은 차별도 아니고 배려도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할 때, 많은 업장에서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라는 안내를 합니다. 그 연장선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문제는 '임의로' 판단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 외에는 판단할 수 없기에 대상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명확하게 묻는 것이 서비스 이용자를 존중하는 것과 더불어, 서비스 제공자가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질문을 던질 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도 절대원칙은 위와 같습니다. 문제 상황을 임의로 판단하여 선택지를 주어선 안됩니다. 상황을 요약하여 설명한 뒤,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면 요청해 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번 사례를 예로 들면, 시각에 제약이 있는 손님이 샤베트를 주문했을 때 '샤베트는 잘 저어 드셔야 하는데, 저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안 됩니다. '샤베트는 올려진 민트 잎을 제거한 후 깊게 섞어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관련하여 필요하신 사항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물어본 뒤, 답을 듣고, 서비스 제공자가 제공할 수 있는 차원에서 제공하면 됩니다. 심지어 저 손님은 민트 잎이 올려진 저어 지지 않은 샤베트를 받아 본인이 직접 젓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3. '서비스 이용'의 문제 - '감각'과 '느낌'은 다르다.


 청각에 제약이 있는 분들을 위한 자막 서비스를 보면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 '경쾌한 음악' 같은 설명이 등장합니다. 어차피 와인이 부딪히는 것은 보이고, 음악소리는 실제로 어떤 음악이 들리는지 모르니 이런 자막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이가 의도한 연출을 이해하고 이입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분위기' 혹은 '뉘앙스'라고 말합니다.


 신체활동에 아무 제약이 없는 우리도 인지가 불가능한 범위까지 생각하며 그 '분위기'를 즐깁니다. 심지어 재화와 서비스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항까지 즐깁니다. 같은 브랜드의 카페라도 좋은 추억을 쌓은 동네에 있는 카페를 유독 좋아할 수 있습니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기업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 제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즐길 때, 그것에 얽힌 여러 요인들이 내가 감각 가능한 것인지는 생각보다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서비스 이용자의 신체적 제약에 대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재화가 서비스하는 가치 중 일부를 임의로 누락시키는 것은 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1번에서 언급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비스 이용자가 재화의 어떤 것을 어떻게 소비하고, 이용할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시각에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쁜 잔으로 와인을 마시고 싶을 수 있습니다. 청각에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멋진 음악이 퍼지는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감각을 실제로 느끼는 것과 무관하게 그것이 창출해 내는 분위기나 느낌을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서비스가 신체적 제약이 없는 사람에게 맞추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는 신체 제약이 있는 서비스 이용자가 '무조건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서비스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지 아닌지는 이용자에 달려있습니다. 신체적 제약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는 일은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에서 다룬 3가지의 이유 모두 '서비스 이용자의 불편을 임의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것은 신체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무조건적인 동정'과도 맥락을 함께 합니다. 신체적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기준과 취향에 따라 세상을 살고, 즐기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는 신체적 조건과 무관합니다.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도 서비스 이용자의 조건과 상황을 임의로 판단하여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범위를 한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예측할 수 없는, 혹은 대비되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상황을 설명하고 요청사항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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