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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ug 27. 2021

담백하게 치열한

윤상윤 개인전《유벤투스Juventus》

 

Take 3_acrylic on canvas_31x40cm_2021

 '헝그리Hungry 정신精神'.  '절박함을 가지고 벼랑 끝이라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임하는 자세'를 뜻하는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절박함'을 '강조'하던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비슷한 말로 '노오력'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노오력'과 '헝그리 정신'의 쓰임에 차이라고 한다면, '헝그리 정신'은 운동경기에서 많이 쓰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권투 같은 별다른 비용과 도구 없이 오로지 몸으로만 격돌하는 종목에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헝그리 정신'의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경기에 돌입하는데 앞서 '절박함'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강요'한다는 것이겠지요.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배곯는 심정'으로 임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경기를 '벼랑 끝의 심정'으로 치러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각자 다른 목표가 있고,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다른 맥락이 있기 때문에 각자만의 이유와 감정으로 경기를 치르면 됩니다.



 

Lush Life_oil and acrylic on canvas_45x53cm_2021


 윤상윤 작가님의 작품 안에서 펼쳐 치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역시 진지합니다. 빠르고, 날쌥니다. 치열하고, 박진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무언가 빠졌습니다. 표정에선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점찍어져 감정을 알 수 없는 눈, 선으로 직- 그어진 코, 자주 생략되는 입. 얼굴을 보고 다시 경기를 보면, 자세도 어딘가 엉거주춤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치열한 이 경기장에는 '절박함'이 없습니다. '절박함'은 몸이 아니라 표정에서 드러납니다. '악문 입', '부라린 눈', 그리고 어딘가 '서글픈 눈빛'이 절박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정의 요소입니다. 윤상윤 작가님은 표정을 과감하게 지웠습니다. 오히려 익살스럽게 뭉게 버린 얼굴로 웃음이 나게 합니다.


 웃음! 놀이에서 시작한 운동은 '헝그리 정신'을 앞세운 '절박함'이 강조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웃음'입니다. 즐겁고, 신나게 행해지던 놀이의 요소는 사라지고, '승리'로 이름 지어진 '생존'을 위한 발버둥만이 남아, 보는 이들에겐 '감동'보다는 '애석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처절'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상윤 작가님의 작품들은 '절박함'이 낭비되는 시대의 운동을 다른 방식으로 조명합니다. '절박함'은 빠지고 치열하지만 담백한, 그러나 다채로운 '스포츠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Point of departure_oli on canvas_112x193cm_2021


 그래서 윤상윤 작가님도 운동 장면의 세세한 사실 하나하나를 '절박'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생략된 것은 표정뿐만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자세도 사실을 완전히 똑같이 담지 않았습니다. 'Lush life'의 장애물 달리기 선수들을 보면 허들을 '껑충껑충' 뛰어넘습니다. 하지만 실제 장애물 달리기 선수들은 몸을 잔뜩 붙이고 최대한 낮춥니다. 체공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죠. 'Point of departure'의 장대높이뛰기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장대를 고정시키고 높이 뛸 때, 장대는 거의 90도 가까이, 극적으로 휩니다. 하지만 그림의 장대는 시종일관 꼿꼿합니다.


 윤상윤 작가님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묘사하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뭉개진 경기 장면은 운동경기에 늘 상주하며 낭비되는 '절박함'을 지우고, '놀이'로써 운동이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다시 불러옵니다. '처절함' 없이도 '치열하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절박'하지 않고도 '이목을 끌어당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프로의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운동 역시 다색적이고, 어딘가 환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운동의 '놀이'적 성격을 극대화하여 표현합니다.


Open Sky_oil and acrtlic on canvas_31x40cm_2021




 여전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경기는 승패를 가리는 것이니 절박하게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 패하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선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선수는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즐기기 위해 경기할 수는 없는 걸까요? 여전히 우리에게 '절박함'을 '강요'하며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윤상윤 작가님은 다이빙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So what?"


So what_oli on canvas_193x259cm_2021




 윤상윤 작가님의 개인전 유벤투스Juventus는 CR Collective(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20 일심빌딩 2층)에서 9월 25일까지 진행됩니다.


/주최: CR Colletive 씨알콜렉티브 (http://cr-collective.co.kr/)

/주관: 윤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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