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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Aug 30. 2021

시대가 맺힌 하루가 모여

<너와 나의 연대기> 외 김원진 작가 作

<너와 나의 연대기>(앞)와 <연대기의 연대기>(뒤)


 '돌'이라고 지칭하면, '돌' 자체로 하나의 사물입니다. 주먹 정도의 크기든, 집채만 한 크기든 상관없이 그건 그냥 각각 하나의 '돌'입니다. 하지만 '돌'을 '돌 무더기'에 던져봅시다. 이제 '돌'은 자체의 단일한 사물에 그치지 않습니다. '돌'은 '돌 무더기'의 일부입니다. 단순히 각각의 '돌'에 머물지 않고, 가늠하기 힘들 만큼 다층적이고, 형형색색의 '돌 무더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돌'은 각각 하나의 '돌'이 가질 수 없었던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봉투들_회신 받은 일기 봉투_2021


 김원진 작가님은 참여자들에게 종이를 미리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하얀 종이에 참여자들은 하루의 기록을 적습니다. 김원진 작가님은 그 하루의 기록을 '일기이자, 나의 표면에 떠오르는 찰나의 장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유로운 형태로 기록된 참여자들의 기록은 함께 드린 봉투에 담겨 김원진 작가님께 돌아옵니다. 돌아온 참여자들의 기록은 태워집니다. '재Ash'가 되어, 이를 재료로 조각을 만듭니다. 참여자마다 하나씩, 참여자들의 하루마다 하나씩, 참여자들의 하루에 대한 기록마다 하나씩. 그리고 그 조각들은 한 곳에 쌓입니다.


너와 나의 연대기_서신으로 받은 수집된 일기를 태운 재, 밀랍, 파라핀, 철, 발열전구_2021, 부분


 '재'로 만들어 무채색인 '조각'입니다. 정육면체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와 색, 겹겹이 쌓인 재의 층은 각각 다릅니다. 만약 '조각'이 덩그러니 홀로 놓여있었다면, 일상적인 각자의 하루처럼, 각자만의 소소한 의미에 만족한 채,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각'이 한 곳에 모여 풍성하게 쌓이면서, '조각'은 단순히 '재'로 구성된 각자의 인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너머 섭니다. 이제 '조각'들은 각기 다르게 표현된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진 '연대連帶'를 표현합니다.


 '전체全體'가 아니라 '연대連帶'입니다. '전체全體'는 개성을 없애는 합일合一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전체全體'를 표현했다면, 각각의 '조각'을 다시 녹이고 한데 섞어 단일한 객체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連帶'는 서로를 살립니다. 모든 '조각'이 자신의 모습을 지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연으로 한 자리에 모인 '조각'은 자신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조각'을 보며 서로를 이해합니다. 한 개의 '조각'이었다면 그저 '재로 쌓은 조각'에 머물렀을 의미가 서로의 차이를 밝히며 각자의 재가 '어떻게' 쌓였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격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각자만의 맥락을 거쳐 한 곳에 쌓입니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죽이지 않기 때문에, 그 개성이 살아남은 '층'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 '층'은 시대를 증언합니다. 각자 다른 사연들이 모였기에 가능합니다. 대단하고 거창한 사연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각의 삶을 살아온 작은 '조각'들에 각각의 맥락에 따라 '시대'를 묻히고, 그 '시대'는 '조각'에 맺혀 생존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부로 흩어져 있었던 '시대'가 켜켜이 쌓이는 '연대連帶'를 통해 드러납니다.




연대기의 연대기_캔버스에 복합매체_2021, 부분


 김원진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개인의 '조각'들이 '재'의 모습으로, '재'가 쌓인 '지층'과 같은 모습을 표현합니다. '각자의 하루'는 한 곳에 모이면서 '서로의 하루'를 빛내고, '연대'로 나아갑니다. 하루의 의미는 '각자의 하루'일 때보다 '서로의 하루'일 때 의미는 더 커집니다. 물론 다른 참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참여자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참여자 각각의 하루를 기록한 종이를 태우고, 종이를 태우며 생긴 재로 만든 조각들이 더 이상 각각의 조각이 아니듯, 참여자의 하루는 연대를 통해 '시대의 일부'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김원진 작가님의 <연대기의 연대기>는 9월 18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2021 금호창작스튜디오 16기 입주작가전: 하나의 점 모든 장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홍예지 (https://www.instagram.com/yeji_c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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