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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Sep 01. 2021

정원庭圓이 된 화폭畵幅, 그래서 화원畵圓

강은영 개인전《Windows》

Rosaceae_종이에 포토폴리머_49x37cm_Ed.1/5_2021


 정원庭圓은 '의도된 자연'입니다. 자연의 식물들을 개인의 기호에 맞게 끌어와 공간을 꾸밉니다. 꾸밈에는 의도가 있고, 전체적인 구상이 있습니다. 식물 개체들의 생명력이 중요하지만, 그 생명력이 한데 모인 정원의 전체적인 모습도 중요합니다.


 화폭畵幅도 그렇습니다. 화가가 의도한 데로 각자 빛을 품고 있던 재료가 하얀 배경에 모입니다. 화가는 신중하게 재료를 고릅니다. 재료의 상태뿐 아니라, 화가의 의도와 다른 재료의 합도 고려합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 재료 하나하나의 표현이 중요하지만, 이 표현들이 모인 화폭의 전반적인 그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Blue Alkanet Tree_종이에 포토폴리머_2021

왼쪽 끝: 37x27.5cm, Ed 1/5 (Layer 3)

두 번째: 48.5x39cm, Ed 1/5

세 번째: 38x28cm, Ed 1/5 (Layer 1)

네 번째: 28x38cm, Ed 1/5 (Layer 2)

네 번째 위: 28x19cm, Ed 1/5 (Layer 5)

가장 밑: 37.5x28cm, Ed 1/5 (Layer 4)


 화폭畵幅과 정원庭圓은 같은 성격을 지닌 공간입니다. 전체적의 의도에 맞춰, 생명력을 지닌 개체들을 한데 모아놓은 곳입니다. 강은영 작가님은 판화의 특징을 활용하여 화폭과 정원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레이어들은 어딘가 허전한 곳이 있습니다. 작은 꽃이 화폭 구석에 맥락 없이 놓여있기도 하고, 풀과 잎사귀들이 놓여있는 화폭은 무언가 곳곳에 표현이 빠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레이어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을 때, 작가님이 의도한 전체 그림이 드러납니다.


 각각의 레이어에 표현된 식물들은 그 자체로도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표현되었지만, 그 의도를 예측할 수 없게 분리된 개체들은 어딘가 허전함을 가집니다. 그 허전함은 의도를 밝혀내는 순간 사라집니다. 화폭畵幅이 정원庭圓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Landscape_식물, 조화, 마른 나무, 흙, 돌, 나무, 이끼, 이끼 러그, 사진, 식물 생장등_가변크기_2021 부분


 그런 화폭畵幅이 모인 강은영 작가님의 공간은 화원畵圓이 됩니다. 나아가, 화원에 정원庭圓을 직접 초대했습니다. 종이와 땅을 넘나드는 강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주어진 공간이 의도가 더해지면서 '예술의 놀이터'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 놀이터에서 관객은 직접 참여하여 화원畵圓의 일부가 됩니다. 액자는 작은 창Window입니다. 종이에 찍힌 식물 판화를 액자를 통해 봅니다. '학고재 디자인ㅣ프로젝트 스페이스'의 벽면 전체도 창Window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화원에 초대된 정원을 유리벽Window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액자와 창 모두 관객과 대상을 분리시키지만 서로를 보는 것은 허락합니다.


 공간을 구분하는 창을 통해 전시장 밖의 관객과 안의 관객은 서로를 화원畵圓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창Window으로 분리된 두 관객은 다른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의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각각은 다른 화폭畵幅, 혹은 정원庭圓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를 다른 의도에 귀속된 개체로 '감상'합니다. 양방향의 관객은 화원畵圓의 일부가 되어 강은영 작가님이 의도한 각각의 화폭畵幅, 혹은 정원庭圓에 함께 합니다.




 공간은 의도에 따라 수없이 많은 의미를 표현하며, 공간을 구성하는 개체에 의해 그 표현 역시 시시각각 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폭畵幅과 정원庭圓이라는 서로 완전히 달라 보였던 두 의도된 공간은, 흩어져 있는 개체를 모아 빈 공간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만납니다. 강은영 작가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Window를 통해 화폭과 정원, 화폭과 정원을 보러 온 관객을 한 공간에 모아 전시공간을 화원畵圓으로 만듭니다.


 강은영 작가님의 전시 Window는 예술작품과 예술공간, 예술 관객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작품과 공간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작품은 서로 관계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공간은 작품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객의 움직임이 없다면 작품 사이의 호응도, 공간의 의미도 무색해집니다. 관객이 없는 공간은 수장고收藏庫와 다름없습니다. 관객은 작품과 작품을 이으며 공간을 활보합니다. 활보하는 관객은 이방인처럼 보이지만 분명 예술공간의 주체적 참여자이며, 구성원입니다.


 이렇게 관객이 화원畵圓의 일부임이 드러나는 것은 창Window를 통해 가능합니다. 화폭畵幅과 정원庭圓을 잇는 의미의 연결고리이면서, 화원이 생명력을 가지는 원동력이 되는 현상을 창밖의 관객들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창 안의 관객 역시, 창밖의 관객을 보면서 화원에 참여하지 않는 관객을 보며, 자신이 다른 공간에 설정된 다른 의도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화원畵圓 안에 참여하는 관객은 정원庭圓에서 겪는 '쉼'을 경험합니다.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일종의 일탈감입니다. 식물원에 들어온 듯한 상쾌함도 '쉼'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몫을 하겠지만, 전혀 다른 공간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기존의 무거운 역할에서 벗어나는 해방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Window에 '참여'하며 관객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경험과 함께 기분 좋은 탈출감을 느꼈습니다.



/주관: 학고재 (http://www.hakgojae.com/)

/주최: 강은영

/사진출처: 홍예지 (https://www.instagram.com/yeji_c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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