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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Sep 16. 2021

우렁차게! 태풍과 구슬이 구르는 소리

<The eye of typhoon: silence> 김예솔, 박상현 作


The eye of typhoon: silence_아크릴, 쇠구슬, 모터, 스프링, 물, 스폿등, 알루미늄_가변크기_2021 일부


 천장에 매달린 모터가 크고 거친 소리를 내며 아크릴 판 위에 모여있는 쇠구슬 두 개를 끌고 있습니다. 소리가 웅대하고, 모집니다. 방 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운동에너지. 세 방향을 감싸고 있는 거울이 소리를 더 크게 앞으로 보내는 것만 같습니다.


 거울은 '태풍의 눈'의 외양도 더 웅장하게 보여줍니다. 커다란 아크릴판은 거울을 통해 여러 개의 분신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담긴 약간의 물은 투명한 아크릴판에 시각적 굴곡을 만듭니다. 이 굴곡은 보기에도 크기에 비해 묵직할 것 같은 쇠구슬의 육중한 움직임에 따라 바뀝니다. 굴곡을 만드는 물은, 유연한 프리즘이 됩니다. 수직으로 쪼이는 빛을 사방으로 반사시킵니다.


 아크릴판 위를 굴러가는 쇠구슬의 움직임을 보면, 플라스틱 기찻길을 따라 녹음된 기차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장난감 기차를 보는 것 같습니다. 소리는 크지만, 움직임은 앙증맞습니다. 천장에 부착된 모터를 따라 구슬이 굴러갑니다. 모터에 달린 실, 그 실 끝에 달린 자석이 두 개 쇠구슬 중 뒤 구슬을 당기면 앞 구슬은 뒤 구슬이 미는 데로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문득 구슬이 움직임을 멈춥니다. 뒤 구슬을 당기던 자석이 앞 구슬에 닿으면, 모터가 구슬 두 개를 끌 힘이 없어서 멈추는 것입니다. 뒤 구슬만 끌고 앞 구슬은 구르기 때문에, 한 개 구슬의 마찰저항만 힘으로 이기면 됩니다. 모터의 힘은 두 개 구슬의 마찰저항보다는 작고, 한 개 구슬의 마찰저항보다는 크기 때문에, 자석이 앞 구슬과 뒤 구슬에 모두 닿으면 우두커니 서게 됩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모터와 두 개 구슬에 걸친 자석이 힘겨루기를 하다가 모터가 이겨 자석이 앞 구슬을 놓치면 다시 뒤 구슬을 당기고 앞 구슬을 굴려 쇠 구슬은 굴러갑니다.




The eye of typhoon: silence_아크릴, 쇠구슬, 모터, 스프링, 물, 스폿등, 알루미늄_가변크기_2021 일부


 장난감 같은 아크릴판 위의 세계가 천정에서 내리쬐는 빛으로 아크릴판 밑에 그림자를 만들면, 훨씬 거대한 미지의 형상이 만들어집니다. 한아름이었던 아크릴판이 적어도 4배는 커진 것 같습니다. 그림자는 주변을 둘러싼 거울을 따라 거대한 원형을 완성합니다. 비친 빛을 따라 거대한 '태풍' 같은 모양을 보입니다.


 아크릴판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그림자만 보며 땅에 드리워진 형상을 이해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불규칙하게 기어가는 두 개의 원형,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일렁이는 빛깔, 가늠할 수 없는 크기...... 마주한 적 없는 괴수를 마주하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 형상은 '고요'합니다. 천지를 울리는 소리를 내는 것은 그 형상 위에 있습니다. '고요한 태풍'.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태풍이 머리 위에서 휘몰아친다는 것을 그림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정체 모를 거대한 것에 대한 공포는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 이미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이름을 만들어냅니다. 그림자를 통해 맞닥뜨린 미지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막연한 공포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넘어서야 합니다.


 공포를 넘어서 베일을 벗깁니다. 알고 보면 허무해질 만큼 간단한 것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석이 구슬 두 개에 닿으면 전진이 할 수 없을 만큼 약할지도 모릅니다. 이때 우리에게 '혼돈의 공포'로 다가온 '불규칙성'은 오히려 '약함의 증표'가 됩니다.




 그러나 아크릴판 위의 장난감 같은 세상의 원리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아크릴판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세상의 위상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어 간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빛과 위치, 모양을 통해 구분되는 두 층위는 어느 한쪽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물의 다른 형상으로서 각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 두 형상은 같은 원형을 가졌음에도 분리되어 존재합니다. 한쪽은 앙증 맞고 어딘가 약한 구석이 있는 아크릴판이지만, 한쪽은 훨씬 거대하여 극히 일부만 드러나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는 태풍이 됩니다. 비록 공통된 사물에서 분리된 형상이지만, 형상을 목격하는 사람에게 다른 감상을 제시합니다. 작품 <The eye of typhoon: silence>에 아크릴판 원형을 중점으로 볼지, 드리워진 그림자를 중점으로 볼지는 감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저 작품의 일부나 연장이 아니라 하나의 의도에 다르게 표현된 또 다른 작품이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김예솔 작가님과 박상현 작가님의 <The eye of typhoon: silence>는 을지로 OF(서울 중구 을지로15길 5-6 경진빌딩 6층)에서 진행되는 '탈출 가능한 우물'에서 9월 26일까지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기획: 콜렉티브 9229 (https://www.instagram.com/collective9229/)

/장소: 을지로 OF (https://www.instagram.com/55ooofff/?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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