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봉주 Sep 17. 2021

반려식물이 꿈을 꾼다면

<한 뼘> 이향아 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어딘가 가슴 아프면서도 어딘가 따뜻합니다. 1인 가구가 한창 늘어가는데, 코로나19 전염 사태로 사람과 나누는 교감은 극도로 제한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혼자 살면서 가끔 친구 얼굴을 보는 낙으로 많은 분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 시대는 좀처럼 허락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등장 이전에도 친구는 가끔 만났으니, 가끔 사람들을 만나 나누는 교감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교감의 '절대량'은 생각보다 큽니다. 우리는 단순히 직접적으로 관계를 맞고 있는 사람들하고만 교감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스쳐가는 사람들, 영상에 드러나는 군중, 인파의 울렁거림도 교감입니다. 간접적이지만, 마치 일상의 소음처럼, 우리 삶 전반을 가득 메우는 얕고 넓은 교감입니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며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또한 매우 심각한 '비非교감'이지요. 즉, 우리는 교감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교감이 부재한 순간에 수시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제한된 교감의 시대를 타파하기 위해 반려동물을 분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분들에게 반려동물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필요한 비용, 공간, 노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식물'이 대두됩니다. 동물보다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산책시켜 줄 필요도 없고, 분양 이후 추가 비용은 온도와 습도만 잘 신경 쓴다면 '0'에 가깝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반려동물을 분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절박한 교감을 찾아 헤매다 식물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동물 이외의 존재와도 교감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감 부재의 시대'는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 한껏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뼘_광목천에 채색, 호분, 볏짚, 화분_가변크기_2021


 넓은 천 한가운데 둥근 구멍이 까만 속을 드러냅니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물결같이 원들이 나타납니다. 흙 둔덕으로 이루어진 원들을 따라 짚과 모래성들이 나타납니다. 드문드문 거친 돌들도 있습니다. 마치 밭갈이를 원 모양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쟁이질을 따라 깊이 묻혀있던 흙과 잔뿌리들이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흙 고랑으로 그려진 장미 같기도 합니다. 커다란 흙장미 앞에 다양한 크기의 화분들이 놓여 있습니다. 옹기종기 모인 반려식물들은 무엇을 하는 중일까요. 한데 모여 커다란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걸까요. 


 식물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도 제한됩니다. 하지만 공상이 제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화분에 담긴 식물이라고 상상도 화분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물론, 보고 들은 것이 화분으로 제한되어 상상도 그 모습을 닮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각하면, 흙장미는 화분 모양의 연장같이 느껴집니다. 은 원형의 화분에서 점점 퍼져나가는 영향력. 자신의 몸뚱이는 저 화분만 하여 흙에서 자신을 끄집어낸다고 해도 아직 저 정도 구멍밖에 남기지 못하지만, 퍼져나가는 파동처럼 식물은 자신의 의지를 끄집어냅니다. 화분 외의 세상을 경험한 적 없어, 화분보다 넓은 세상마저도 화분을 닮아 있지만, 반려식물의 상상력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흙장미 그림은 반려식물이 꾼 꿈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물이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식물도 꿈을 꿀 것입니다. '교감 부재의 시대'에 우리는 식물이 '반려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반려자'는 '교감하는 대상'이지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누군가와 '교감'한다면, '교감交感'은 '느낌을 나누는 것'임으로, 대상도 '느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식물도 자기만의 '느낌'을 가진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한 뼘'짜리 화분에서 돋아나는 상상력. 우리의 반려식물들은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어떤 공상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우리가 반려식물을 생각하듯, 반려식물들도 우리를 생각할까요? 반려식물과 직접 소통하는 일은 먼 미래나 가능하겠지만, 오늘은 잠들기 전에 제 방 한구석을 언제나 지키고 있는 반려식물과 눈 맞춤을 해야겠습니다.




 이향아 작가님의 <한 뼘>은 을지로OF(서울 중구 을지로15길 5-6 경진빌딩 6층)에서 진행되는 '탈출 가능한 우물'에서 9월 26일까지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기획: 콜렉티브9229 (https://www.instagram.com/collective9229/)

/장소: 을지로 OF (https://www.instagram.com/55ooofff/?hl=ko)

매거진의 이전글 우렁차게! 태풍과 구슬이 구르는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