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을 앞둔 학년말은 교과 진도도 다 나가고 학교생활도 마무리 작업만 남아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별일 없이 지내던 저희 반에 한순간 시끌벅적하게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J군의 고래잡이, 즉 포경수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출근을 한 어느 날 이상하게 교실이 시끌시끌했습니다. 원래라면 저희 반 아이들은 조용히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각자 정해진 아침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일찍 온 남학생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무언가에 대해 강력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굉장히 심각해 보여 저도 우선 대화를 끊지 않고 가만히 업무 준비를 하며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위에서 말한 포경수술에 대해 열띤 토론 중이었습니다. J군은 그날 조퇴를 하고 고래를 잡으러 갈 예정이었던 겁니다. 아침에 J군의 어머니께 오늘 병원 진료가 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J군이 오늘 수술을 하게 됐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이미 수술을 한 유경험자 친구와 주변에서 주워 들은 풍월이 많은 친구가 J에게 온갖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수술 선배님인 P군이 들려주는 의료적 지식과 생생한 경험담은 저도 모르게 그 대화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P군은 J군에게 ‘레이저, 가위, 칼을 이용한 수술이 있다, 마취를 동서남북으로 한다.’며 친구의 수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고, 수술이 끝난 후 통증이 밀려오며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만 꽤나 힘들 거라는 위로를 마치 인생 2회 차 대선배처럼 건넸습니다. 친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원래도 피부가 새하얘서 제가 ‘찹쌀떡’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J군의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려갔습니다.
친절한 친구들 덕에 J군이 오늘 고래를 잡으러 간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저희 반 친구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J군을 걱정하고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반의 한 여학생은 다른 남학생에게 그 수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이냐고 물었고 질문을 받은 남학생이'네가 지금껏 겪은 고통의 총합'이라고 대답하자 여학생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 모습도 봤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J군이 고래를 잡으러 떠나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그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J군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몇몇 남학생은 떠나는 J군을 포옹으로 위로했습니다. 나머지 친구들과 저는 그저 잘하고 와! 파이팅! 을 외쳐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반 모두의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J군은 떠났습니다. J군이 떠난 후에도 아이들은 J군이 겪을 고통을 걱정하느라 한세월을 보냈습니다.
제 교직 생활에 고래를 잡으러 떠나는 친구를 응원하고 배웅한 적은 처음이라 저 또한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J군은 어떻게 됐냐고요? 주말 동안 잘 회복했지만 걸음이 늦어져 그다음 주에 조금 지각했답니다. 송창식 님의 ‘고래 사냥’의 가사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