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by 별사람

세상을 만났다고 외치듯

크게 울어 젖히고 싶다.


날 바라보는 손가락을 바라보다

온 힘을 다해 새끼손가락을 잡아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실룩거리는 엉덩이의 중심을 잡아

날 바라보는 품으로 달려가

나는 한 번도 못해본 그런 큰 포옹을 하고 싶다.


낮에는 넓은 동산을 친구 삼아 나비를 쫒고

메뚜기를 잡아 저녁에 먹을 메뚜기 튀김 얘기를 하며

신기에 찬 눈으로 물가의 물고기를 세어 보고 싶다.


유치원에 갈 땐 우산을 꼭 쥐고,

우비를 싸매고, 장화 신은 발로 발길질하며

비바람을 이기고 싶어 휘청이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 세상을 느껴보고 싶다.


깊고 깊은 우물에 빠질까 내려다보면서도

휘청이는 다리가 불안해 발돋움하지 못하고

발돋움하여 올려다보는 저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몇 개인지 세어보고 싶다.


토요일이면 따뜻한 방 안에서

아빠가 해주는 라면을 기다리다

토요명화가 시작되기 전의 화려한 광고를 보고 있으면

배는 꼬르륵, 라면은 보글보글, tv속에선 밤밤밤밤.


생일엔 정글짐을 오르며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다.

첫사랑에게 고백하고 싶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진심으로 공부해보고 싶다.

내가 선택한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나를 숨 못 쉬게 하는 너와 사랑하고 싶다.

나를 숨 못 쉬게 할 때까지 너와 사랑하고 싶다.


내 소원처럼 20대에 아빠가 되게 해 줘.

내 소원처럼 네가 내 곁에 있게 해 줘.

내 소원처럼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게 해 줘.


남편이 되고 싶다.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다.


아빠가 되고 싶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사랑받는 아빠가 되고 싶다.


아들이 되고 싶다.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싶다.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선 잘 모르겠다.

그 나이 이후로 지내보지 않아서

그 나이 이후로 살아보지 않아서

그 이후로 어떤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도

달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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