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이름의 문진
<목화집>을 읽으면서도 집 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었는데 이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역시 같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컨텐츠를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만나게 되는 우연도 재미있다. 딱히 인생에 큰 교훈이나 감동을 얻은 영화였던 것도 아니고, 어쩜 저런 연기를할 수가 있지 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연기귀신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촬영기법이 쓰였다거나 하는 영화도 아니었던데다 사실 이제는 조금 진부하다고 생각될만한 주제, 그러니까 알고보니 파랑새는 우리 옆에 있었어,류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였지만 뭐,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였다. 브루클린의 멋진 풍경과 너무나도 멋지게 나이든 두 배우의 모습을 보는 재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집을 사고파는 과정을 엿보는 재미, 소소한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그 노부부의 여정을 쫓으며 뉴욕에서 집구하는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었다.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40년간의 추억이 쌓인 공간이 있다는건 어떤 느낌일까? 그러고보면 내가 태어나 자라고, 스무살이 될 때까지 나는 전쟁이 끝나고 할아버지가 지었다는 오래된 집에서 살았었다. 그 집을 이사할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나 생각해보면 사실 조금 홀가분해했던것 같다. 그 집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었고 내가 공들여 쌓아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때의 그 우울했던 상황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이사갈 집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구질구질한 집을 떠난다는것은 좋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은 그저 구질구질한 집, 만은 아니었다. 나의 유년시절, 학창시절의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있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땐 그런 추억들이 줄 의미같은걸 생각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고치고 다듬어, 계속 살았으면 좋았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언뜻 드는것도 사실이지만 뭐, 우리집이 그럴 상황은 아니었지. 지금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내 유년의 추억이 쌓여갔던 골목은 답답한 빌라촌으로 변해버렸다. 그 후로도 뻔질나게 집안 사정상 이사를 다녔다. 그 때마다, 두 서너박스씩 내 추억들은 버려졌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돌려 썼던 교환일기며, 부끄러운 기록만 가득한 다이어리며, 편지며. 참 쉽게 잘도 버렸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느니, 하루에 하나씩 버린다느니 하는 정리하는 삶을 권하는 책들이 유행이다. 나 역시 심플 이즈 베스트라며 참 잘도 버리고 산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문득, 이대로라면 나.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참 외롭고 쓸쓸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속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문진은,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미풍에도 팔락팔락, 내 마음이 한 장 두 장 날아가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언제쯤이면 한 곳에 정착해서 내 문진에 무게를 더할 수 있을까. 과연 해답은 결혼일까, 라는 (나로서는) 얼토당토않은 생각까지 해 버렸던 것이다. 이 영화때문에 내 의식의 흐름이, 너무 멀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