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내가 싫은 것이다.
기자출신 작가, 장강명의 소설은 기자라는 직업군 특유의 특성 탓일까. 지독히 현실적인 것 같다. 다분히 '있을 법 한 이야기'를 가지고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강렬하게 내던지는 스타일이랄까. (고작 두 작품 읽어보고선 뭘 다 아는것처럼.) 한국 사회는 줄세우기 문화가 너무 강하다. 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한국 사회는 유독'이라는 말을 덧붙이지는 못하겠는데 어쨋든,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줄세우기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내가, 살아봐서 잘 알겠다. 그런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는 그래서. 호주는 좋았을까? 그랬을까?
난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줄 뒤쪽에 서 있는 스스로가 싫어서 였을 것이다. 계나는 앞으로 '외국'에서 사는 것으로 한국식 줄세우기에서 앞줄에 선 '기분'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아 끊임 없이 한국에서 여전히 시댁 욕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와, 프로그래밍도 못하면서 IT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비교우위의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여기 이 지점이다. '비교우위'. 남들과 다르게, 남들보다 잘, 남들보다 멋지게 살아야하는거다. 그런 행복이 과연 언제까지나 유효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본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그들은 아니 우리는 또다시 줄을 세울 것이다. 그 속에서 아마 줄 뒤에 선 자는 또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한국에서 '탈출' 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비교우위의 안도감을 느끼며 또, 그곳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계나는 '기자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다시 호주로 떠난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으로 한동안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갈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계나는 분명 멋진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행동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굳이 호주가 아닌 이 지옥 안에서 해 낼 순 없었던걸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것 또한 어쩔수가 없다.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것이 반드시 '내가 아닌 당신 때문에' '빌어먹을 사회 시스템 때문에' 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는걸까. 이미 우리, 나 자신이 그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만이 우리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건 아닐까.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항상 드는 생각은, '적어도 우리 세대부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과 '그러나 우리 세대 별 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뒤석여 참, 뭐라 한마디로 정리가 안되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