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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May 12. 2016

공부란 무엇인가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물음.



나 역시 공부 뒤에 숨어 내 삶의 다음 코스로의 한 걸음을 유예시켜본 적이 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대학교 5학년이 되었던 때의 이야기이다. 기업체는 졸업예정자를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는 변명은 실은 지금은 할 수도 없다. 결국 원하는 회사엔 가지 못했고 나는 지금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유예의 시간동안 과연 나는 그 시간의 값 만큼의 일인분을 하며 살았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 아니, 전혀 아니었다. 엄기호, 하지현의 대담집, <공부 중독>은 묻는다. 어떤, 공부를 하려 하냐고. 왜, 공부를 하려 하느냐고.


만점이 흔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가 틀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십여년 공부 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그 방식이 삶의 기본 태도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


공부가 우리 사회에서 삶의 다음 담계로 넘어가는 것을 유예시켜주는 프리패스가 되어버린거죠. (중략) 시험을 안 보면 좋은게 실제 내 능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저는 이것을 요즘 아이들이 정신 승리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통해서 나는 여전히 가능성있고 굉장히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거예요. 자기애의 훼손 없이 말이죠.


사실 삶은 어느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때 배울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런 일체의 과정을 다 위험한 것이라고 불온시해요. 배우긴 배워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게 배워야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떄문에 피해야하고, 대신 그걸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관념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 입니다. 다시 존 듀이 식으로 말하면 겪는 것 없이 그저 배우는 것이죠. 저는 사는 건 감당하는 거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까지는 겪으면서 감당하는거고, 감당할 수 없을 때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는데, 감당해나가는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고 할까요?



우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0년의 과정을 거쳐 지식은 '주입 받는' 것이고 답은 '하나 뿐인' 것이라고, 그렇게 세되되어 자라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 세상에 대한 호기심.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 다름을 이해하는 관용. 정답을 향해가는 용기. 정답을 찾아내는 시간의 소중함. 뭐 그런 것들 아닐까. 대학생때까진 뭐 하기 싫어도 알아서들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주니까  딱히 찾아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야,  아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배우고싶다 라면서 강좌같은걸 엄청 찾아보고 들으러가고 그랬었던것 같다. 그래, 방통대도 다녔었지. 이 책을 읽고 '강좌를 찾아가 듣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안가는 것 보다 가서 듣는게 좋은것일테다. 관심 가지고 찾아본 것 만으로도 일단은 할 걸음 나아간 것일 테니까. 그런데 잘 정제되고 정리된 2시간, 을 [주입]받고 난 뒤에, 사실 그것만으로 막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워하며 그걸로 끝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지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감당해내는 과정'을 거친게 맞는걸까.....하는 생각을.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그러나 다만 올해부터는. '위험하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하는 시간, 찾아보는 시간. 그렇게 '허툰' 시간을 할애하며 공부하고, 내 에너지를 들여 알아내면서. '쉽지 않게' 말이다. 여전히- 앞으로도. 이런 저런 강좌도 열심히 들으러 갈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2시간 동안 강좌를 들은 나'에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것을 '감당해나가는 과정'을 꼭. 거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니까 함부로, 쉽게, 이것저것, 기웃기웃대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본 뒤에 움직이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과욕이고, 허세의 수단일 뿐이지 않을까.


이 책은 사실 '공부하는 태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태도와, 왜 그러한 태도로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하고 있었더랬다. 엄기호 X 하현진이 대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아직, 그것 말고는. 공부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것도 현실아닐까. 나의 세대는 '공부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세대'와 '공부해봤자 금수저에 밀리는 세대'의 중간에 선, 그나마 운이 좋은 세대인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해 봤다. 아무래도 어렵다. 이 꼬이고 꼬여 아예 한 뭉치가 되어버린 문제들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정말이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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