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우리'의 뒤에 서고 싶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곳에선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처음으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려봅니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책과 거리가 멀었던 어린이, 아니 청소년, 아니, 청년 시절까지도. 정말 책과 먼 인생을 보낸 덕분에, 그나마 책과 조금 가까워진 후에도 경성의 작가들이나 일본 작가들에게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부끄럽게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것도 작가님의 소설 작품이 아닌,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인 <세상에 예쁜것>을 통해서 말이죠. 그 후에 부러, 몇 권 열심히 찾아 읽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지난 기록을 되짚어보니 <친절한 복희씨>와 제 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던 <그리움을 위하여>가 제가 읽은 선생님의 작품의 전부더군요. 감히 이런 제가 '우리'에 끼어도 되는걸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을, 그리고 인간 박완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읽으며, 선생님은 한결같은 분이셨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과 문학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인터뷰어와의 대화이던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한결 같음으로 써내려가셨을 선생님의 작품들을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점이, 저는 지금 참 부끄럽습니다. 서둘러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선생님의 성함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문학동네와 세계사에서 각각 출간해 놓은 산문 전집가 소설 전집을 사야할까, 아니면 선생님의 작품이 태어난 시간을 따라 <나목>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아직까지 고민만 수 없이 하며 선생님의 작품읽기를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초등학생 때,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책을 자주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통, 책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한가하실 때면 뿅뿅대는 핸드폰 게임에만 몰두하시곤 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함께 책 읽기를 권해보았습니다.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엄마가 읽어서 좋았던 책이 뭐냐 묻자,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선생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완벽한 제목을 말씀하시진 못하셨습니다. 그 왜..... 싱아...... 라고 하셨죠.)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제가 읽지 못한 선생님의 소설이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에게로 다가서는 그 시작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하기로. 그리고, 선생님의 소설을 하나하나 엄마와 함께 읽어보기로 말입니다.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나의 추억거리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누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재미나지도 않는 엄마와 저의 무사안일한 매일매일이 선생님의 소설을 통해 반짝이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고통에만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해서 무기력해져버린 삶에도- 위안이 필요하고 (P201),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의 작품은 엄마와 저의 무기력해진 삶에 분명, 큰 위로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소설과 수필을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가면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아끼는 수 많은 사람들의 등 뒤에 살짝, 줄 설 수 있게 되겠지요. 그 때가 오면, 다시 한 번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꺼내어 읽고, 선생님, 마음이 한껏 좋았어요, 만나뵈어서.라고 부끄러운 마음 없이 외쳐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