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잔치 속에서.

by 이병도

지난주에 깊게 닿아있다 생각한 이들에게서 깊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닿아있다고 믿어온 이들이 사실 영혼 대 영혼으로 닿아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회상의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기에 슬픔은 지극히 더욱 더 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허상을 좇고 있었고 그것을 영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들의 발은 땅에 닿아있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에 붕 떠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모든 게 그렇고 그렇게 돌아가고 그들의 성취는 가시적일테니. 나의 영혼은 그들의 허상으로 이루어진 갑옷에 의해 그들의 영혼을 결코 만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그들 역시 내가 떠나야 할 이들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알 때까지.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이내 그곳을 떠나오며 나는 나와 세상에 말할 수 있었다. 지쳤다. 욕심마저 선의를 향하는 선의에 판정을 내리고 가치를 매기는 아직 죽은 이들의 사회에서. 얼마나 더 선의에 깨어나야하고 희망을 품어야 하고 열정을 다 해야할까? 내가 서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내가 서있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이 삶을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삶의 의미를 잃었고 무기력했고 곧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나 더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4월에 나를 거절한 올버즈 코리아에게 다시 희망과 의지를 전했으나 올버즈 코리아는 나의 진정 어린 제안을 글로벌 회사의 위엄과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던져버렸다. 어쩌면 이 엉망진창인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은 진정으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속해있고 사람의 노력과 성취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그것의 미래를 믿기에 내가 반드시 이곳에 사랑을 전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믿는 존재가 나를 내던져버렸다. 나는 그리 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나를 감쌌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좇는 건가?


도무지 달릴 힘이 없어 그대로 달리지 않았다. 내 눈을 반짝이게 하던 축복 받은 시간은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싶었기에. 슬픔에 젖어 맥 없이 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떠보니 맑은 세상이 창 밖으로 보였다. 이번주 내내 비가 예보되있었는데도.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니 모든 것이 반짝반짝 제 색을 내고 있었다. 푸르고 주황. 세상의 거절할 수 없는 달리기 초대였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1시간 뒤에 시작하기 위해 물을 1L 가까이를 들이켰다. 8시 30분에 출발했다.


맑은 하늘, 산뜻한 공기. 바람은 선선했다. 공기는 무거웠다. 지난주 화요일에 달린 뒤로 단 한 번도 달리지 않았지만 움직임은 경쾌했다. 하지만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곳에 하나하나 정성을 꾹꾹 눌러담고 싶었기에 LSD를 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가볍게 달려나갔다. 과연 내가 후에 기억되어 내가 달리던 길이 기억될까? 사천교를 넘어 홍제천으로 들어서 나무, 풀, 새, 물, 하늘, 길, 흙을 그윽히 바라보며 인사를 건냈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며. 모든 게 제 색을 내뿜고 있었다. 마주 치는 모든 것에 나의 사랑과 성의를 전하기 위해 집중했다.


나를 슬프게 한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니 어느새 한강에 도착해있었다. 저 앞에 누군가가 말을 걸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그 앞을 비슷하게 도착한 행인에게 그는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라고 했다. 나는 천주교인이다. 그때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한 번 더 진지하게 떠올렸다. 수변을 따라 달렸다. 나무와 풀들 사이로 흙길 달렸다. '선의와 희망과 열정, 열의, 열망이 얼마나 더 필요해야 할까? 나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곳에 사랑을 남겨두었다. 죽은 이들과 죽은 이들의 사회는 나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난지캠핑장을 돌아 하늘공원 브릿지로 향할 때 달리는 동안 내 몸은 흔들리는 요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랑살랑, 내면이 평화롭게 요동쳤다. 요람이라. 요람이라.


브릿지를 넘어 노을공원 둘레길을 따라 노을공원 완만한 오르막을 마주했다. 이곳에도 정성을 다해야한다. 그대로 올랐다. 그 짧은 사이에 가을이 되었는지 갈색빛의 나뭇잎이 가장자리로 떨어져있었다. 또 한 번 흐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정상에 다달아 노을공원을 따라 달렸다. 그래도 10월의 울창한 나무들의 그늘 사이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달려나갔다. 한 까치는 보통 이동하는 간격이 깨졌는데도 나를 그윽히 올려다보았다. 너도 내가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거니? 다시 내리막을 따라 큰 메타세콰이어의 소로를 따라 달려 하늘공원 완만한 오르막을 올랐다. 아무리 가볍게 달려도 힘든 건 힘든 것이다. 하지만 내 몫을 해내야만 작별할 수 있기에 힘을 냈다. 그때 한 남자가 저기서 내려오며 나를 보고 모자 챙 왼쪽을 잡아 아래로 눌러 인사를 건넸다. 나는 왼손 두 손가락으로 내 안경 왼쪽 모서리를 가볍게 쳐서 인사를 건넸다. 정상에 오르니 선선한 바람이 이 모든 걸 휘감싸며 지나갔다. 결코 마지막이 될 수 없으니 다음에 또 오라는 뜻인가? 세상은 나를 반기는데 왜 죽은 이들은 도대체 살아나길 거부하고 그것을 모르는가?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이곳을 달린지도 어느덧 9년이 되었는데도 처음으로 고라니가 풀숲으로 뛰어드는 걸 보았다. 정말 놀라워 내가 토끼를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그리로 가보니 정말 고라니가 있었다. 혀로 앞니를 쳐 그를 불렀지만 그는 저 먼 산에서 온 이였는지 황급히 비탈을 내려갔다. 그리로 많이 다녔는지 풀들은 통로처럼 동그랗게 말려있었다.


내리막을 내려가 이어 난방공사 완만한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니 지난번에 봤던 상체의 움직임이 거의 없지만 시원시원하게 다리를 뻗어 내달리던 친구를 거의 같은 지점에서 또 봤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테니 나는 성의껏 나의 존재를 그에게 알리기로 해 정성껏 속도를 내어 그를 따라갔다. 몸도 내 기대에 부흥해줘 그와의 간격은 지난번보다 훨씬 좁혀졌다. 하지만 오늘도 그가 정말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그는 내 시야에서 작게 보였다. 내가 하늘다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저 멀찍이서 큰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향해가고 있었다. 빠른 친구여, 자네는 정말 빠르구먼. 다음이 있다면 한 번 더 도전해보겠네.


나는 바람의 언덕을 달렸다. 그리고 또 인사를 건네야 할 돌아가는 흙길을 달리고 메트로폴리스길의 아리수 음수대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네 모금을 마셨다. 저쪽에서는 한 강사가 강아지 훈련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었다. 나는 난지연못을 따라 달려 물과 잉어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놀이터을 지나 홍제천으로 진입해 그대로 따라 달려 사천교에 올라 다시 사천교 터널을 지나 연남 경의선숲길 초입에서 달리기를 마무리 했다.


종종 마주치는 노견은 늘 힘이 없고 눈이 먼듯 기력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힘차게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세상은 나를 언제든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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