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계속 나를 감싸 안고 해는 계속 내 앞에.

by 이병도

일어나보니 빨래가 아주 잘 말라있었다. 지난주에는 계속 흐렸기에 빨래를 할 수 없었다. 나는 햇빛과 바람이 허락하는 날에 빨래를 해서 바깥에 널어 그들의 도움으로 단숨에 말리는 걸 좋아한다. 나 하나 편하려고 석유랑 전기랑 물 써가면서 세탁기한테 맡기는 것도 영 탐탁치 않은데 건조기까지 써야할까? 그들은 나에게 잘 마른 러닝복을 선물해줬고 그 선물에는 달리기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흐린 세상이 담긴 창문으로 찬 기운과 바람이 스며들었다. 벌써 세상이 한바퀴를 거의 다 돌아 바람막이를 입고 달려야할 때가 온 건가? 평소의 복장에 바람막이만 곁들여서 밖으로 나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람에는 온기가 실려있었는데 오늘의 바람은 확실히 차가웠다. 그러나 역시 10월의 17도. 사천교에 오르자 가슴 부근에 뜨겁게 채인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당장 벗고 싶었지만 몇 개 월만에 입은 바람막이인 만큼 몸이 아직 적응을 못했을 거라 생각해서 좀 더 달려보기로 했다.


홍제천을 따라 한강에 도착하자 갑자기 생각을 바뀌어 바람막이를 벗었다. 해방감을 만끽했다. 한강에서 뭉텅이로 불어오는 거대한 바람은 나와 부딪쳐 부서지며 나를 감싸 안듯 몽글몽글 몸 사이를 빠져나갔다. 이 좋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기 위해 바람막이를 길게 접어 돌돌 말아 어께와 가슴에 동여매지 않고 손바닥 크기로 접다가 결국 구겨서 왼손 오른손 번갈아 쥐며 수변을 달렸다. 문득 왼편을 보니 왜가리가 얕은 물가에 서서 물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위에 따라 주소가 정해질 아마도 클로버들은 오늘은 물속에서 초록빛 생기를 아쉬움 없이 띄며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와 같을 수 없다면. 난 그 자리에서 울겠네. 너 그럴 거라면. 또 그럴 거라면. 참답게 서로를 마주할 수 없어 너의 영혼을 도무지 만날 수가 없다면. 너의 눈에서도 말에서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 표정에서도 몸짓에서도. 너는 어딘가에 붕 떠있을 뿐. 그저 이곳의 약속 위에서 춤추고만 싶다면 각자가 간직한 걸로 만족하자. 나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이. 보고싶어할 필요도 없이. 화가 나겠지만 나는 옳았었던 틀렸었던 너에게 정말 많이 다가갔기에 이제는 더이상 아쉽지가 않구나. 사랑한다.


내 바로 앞에서 구름을 재치고 나온 해를 바라보며 노을공원 완만한 오르막을 오를 때 떠올랐다. 노을공원에 오르자 해는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오르막과 같은 방향으로 길을 따라가자 다시 해가 내 바로 앞에서 구름을 재치고 나왔다. 그는 나의 떠오른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건가? 아니면 철저히 비웃는 건가? 그가 나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고는 판정의 신호를 주는 거라면 아마도 나는 누군가의 생각의 생각의 생각 속에 살지도 모른다. 신성함이 느껴지는 햇빛 아래 나무와 풀숲 사이로 쭉 뻗은 이 길은 아름다웠다. 포레스트가 어린 시절 집으로 달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와 같은 자연 속에서 지낸 적이 없다. 그저 이기적인 쓰레기 더미 위에 조성된 공원 곁에서 살고 있을 뿐. 누군가에게 길러진다는 기분은 결코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조경으로도 사람다움을 꿈꾸고 키워갈 수 있으니 이곳의 모든 것에 감사할 다름이다.


오랜만에 작은 메타세콰이어 숲길과 큰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연결해 하늘공원 급한 오르막을 올라 하늘공원에 도착했다. 아까 노을공원에서 포레스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면 이곳에서는 어머니를 잃은 포레스트가 그저 계속 달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크루즈 컨트롤을 건 것처럼 유유히. 내리막을 내려와 홍제천으로 들어가 몸이 허락해준 부드러움을 잘 활용해 달리기를 알차게 마쳤다.


사실과 정직은 종종 허구로 바뀐다. 대부분은 이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들은 그들 역시 할 수 있는 거라며 그것을 업신여긴다. 나는 그런 그들을 어르고 달래고 속여서 내가 목표한 바로 유도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나에게는 그럴 만한 비상함이 없다. 나는 그냥 온갖 욕을 하면서 그들을 혼내고 싶다. 그게 그들을 사랑하는 내가 지금의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결코 그들의 선생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사랑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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