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날벼락을 맞아본 적이 있는가? 전혀 벼락이 치지 않을 것 같은 햇빛이 쨍한 날씨에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쓴 양산이 문제였던 것인지 날벼락을 맞았다. 온몸이 짜릿, 찌릿하고 털이 곤두선다.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세포들은 어느새 자기 분열을 시작한다. 그럴수록 세포들은 더 강한 날벼락을 원한다. 다시 벼락을 맞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모두 내 이야기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갑작스러운 구매욕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버스 안에서 매년 똑같은 봄 재킷을 입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봄 재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AI 추천이 인기상품을 보여줬지만 이미 입고 있는 옷과 다를 게 없었다. 눈을 돌려 버스 안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봄 재킷을 입는지 살펴봤다. 뒷문 바로 앞에 앉은 한 남자가 입고 있는 옷에 유독 눈이 갔다. 갈색 고르덴으로 장식된 옷깃이 있는 카키색 야상. 며칠을 검색한 결과 ‘바버’라는 브랜드의 재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버’는 영국 브랜드로 대한민국 30대 남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재킷이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캐주얼한 복장에도 잘 어울리고, 정장에도 잘 어울리는 만능 재킷. 브랜드를 알고 나니 내 눈에는 온통 바버 재킷을 입은 사람들만 보였다. 내가 타는 출근시간에 702 버스에는 5명의 바버 재킷을 입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구매욕구가 더 샘솟았다. 가격이 저렴했다면 큰 고민 없이 구매를 했겠지만 순간의 결정으로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금액이라는 문턱 앞에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왜 이 재킷이 필요한지, 지금 구매가 적절한지, 다른 것을 구매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지. 연관된 검색과 거듭된 고민에 지쳐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사야 고민이 끝나겠는데?’ 그렇다. 구매욕구는 구매해야 끝이 나는 무서운 날벼락이다. 곧장 백화점으로 갔지만 빠를 줄 알았던 내가 가장 느렸다. 나와 비슷한 체형의 빠른 사람들이 많아 재고가 없었고 내년이나 되어야 수입이 된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날벼락이었다. 그동안의 고민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래도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해외직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국 해외직구로 구매를 했다. 다음날 며칠 동안 바버 재킷 광고가 나를 따라다녔다. 좀스러운 신중한 고민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느렸지만, 그래도 AI보다 빨라서 다행이다. 해외직구는 잘 도착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던 봄바람은 지나갔고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