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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수 Sep 09. 2023

화장실 디자인과 접근성에 진심을 담아야 하는 이유

접근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접근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At Apple, we believe accessibility is a human right. 

작년 유튜브에 소개된 애플의 <The Greatest> 영상에서 위와 같은 코멘트가 적혀있었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애플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짧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였다. 


접근성은 정말로 기본적인 권리일까?  많은 사람들이 접근성을 생각할 때 정수기 버튼이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거나, 금융거래를 하고 싶은데 대체 텍스트가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아서 진행이 어려운 것과 같이 편의와 관련된 상황을 생각한다. 


하지만 접근성은 생존과 관련된다. 기본적인 신체의 생리적 욕구에 필요한 화장실부터 화재나 홍수 상황에서 자력으로 대피해야 하는 생명과 연결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만약 거주하고 있는 건물에 화재가 났는데, 혼자서 대피할 수가 없다면?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지체장애인 여성은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스스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물리적인 접근성뿐 아니라 교육과 관련된 접근성, 정보에 대한 접근성처럼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개인의 삶 자체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요인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높은 접근성은 개인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을 도와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작년 <안전>호 제작을 위해 만난 카렌은 자신의 높이에 맞춰 주거공간을 리모델링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요리하는 경험을 중시하여 효율적으로 주방 동선을 설계했는데, 그것이 행복한 삶의 일부라 말한다. 

 


이동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No.1 화장실



"화장실이요."

"화장실이죠."

"제일 중요해요. 화장실."


지금까지 인터뷰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 분들에게 물었다. "외출할 때 어떤 게 가장 중요하세요?". 대답은 완벽하게 동일했다. 화장실. 경사로가 없거나 턱이 있는 곳은 뭐 안 들어가면 되지만 생리 현상은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청년은 외부에서 약속이 있을 때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곳은 아예 방문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여행을 떠났는데 인근 1km 내에 화장실이 없을 때의 기분을.


며칠 전 방문한 어느 쇼핑몰은 쾌적하고 화장실 싸인도 눈에 잘 띄어 여러모로 좋았지만, 장애인이 화장실을 혼자서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곳을 살펴보면서 포용적인 디자인과 사용자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미는 경험은 그래도 '당기세요' 보다는 낫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혼자서 문을 밀 때 다리가 문에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화장실 디자인으로 살펴보는 포용적 사용자경험


문을 열 때 우리가 주로 사용하게 되는 신체 부위는 손이다. 물론 발로 문을 열 수도 있고, 위생 상 팔꿈치로 열 수도 있다. 나는 코로나 이후로 팔꿈치를 애용한다. 그런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생각해 보자. 휠체어를 탄 상태로 문을 밀고 들어갈 때, 팔을 쭉 뻗어야만 하지만 다리가 문에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휠체어도 전동과 수동 두 종류가 있는데, 전동은 한 손으로 레버를 조절하면서 갈 수 있어 다른 한 손이 그나마 여유가 있다. 그런데 수동은 보통 양손으로 휠을 민다.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밀려면 한 손으로 휠을 잡은 채 다른 손을 써야 한다. 상당히 불편한 자세다.

화장실 안쪽에는 '당기세요'라고 되어있었는데 미는 것은 사실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당기는 자세는 더욱 어렵다. 휠체어가 문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문을 당겨서 완전히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이 안쪽으로 열리는 각도를 고려할 때 미는 자세보다 더 불편한 자세가 연출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장애인 화장실은 스위치를 누르면 열리는 전동 문으로 되어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겸용 화장실이라면 버튼식 전동문으로 만들거나 문을 없애되 시선이 내측으로 향할 수 없도록 각도를 잘 조절하는 방향을 권장한다. 화장실 문을 굳이 힘을 많이 주어 밀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장애인뿐 아니라 다른 사용자들도 고려해야 한다. 여섯, 일곱 살 아이들이나 고연령 어르신들도 이용하기 때문이다. 손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역은 손에 힘이 약한 사용자들도 힘을 최소로 들여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좋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사용하려면 무릎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무릎 간섭이 많이 돼 보인다. 또한 쇼핑몰이라면 어린아이들도 많이 오다 보니 아이들이 손을 충분히 뻗을 수 있는 길이로 세면대 높낮이에 차등을 두는 것이 좋다. 


©tokyotoilet

문득 생각났던 사례 하나. 문은 없지만 내부로 향하는 시선은 완벽하게 막혀 있는 화장실이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들어가기에 편리하다. 도쿄 시부야에 있다. 일본의 스타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디자인한 도쿄 토일럿 Tokyo Toil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위 화장실은 나오 타무라 Nao Tamura가 디자인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 Maslow의 욕구 5단 계설 중 가장 기본적인 1단계는 생리적 욕구다. 화장실과 같은 위생시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있어서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공평한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디자인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되돌아본다. 말 그대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작년 인터뷰를 진행한 오바마 정부 접근성 자문위원, 카렌 브렛마이어의 마지막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유형의 사람을 폭넓게 고려한 디자인이죠.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누군가 그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면 매우 한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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