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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수 Oct 13. 2023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위한 놀이터 디자인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놀이터 디자인에 관하여

‘놀이는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끝맺는 것이다’


1960년 대 뉴욕 센트럴파크 모험놀이터 건축가 리처드 다트너는 작년 초에 진행한 MSV와의 인터뷰에서 놀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주도성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높이 뛰고, 기어 올라가고, 숨고, 때론 흙을 파고, 놀이는 공간 안에서 예측할 수없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놀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도권과 자율성은 장애 아동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 1989년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CRC)의 제2조에서도 장애에 대한 차별 없이 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이의 평등을 실현하는 장소여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 특성에 따라 노는 방식에 약간의 다름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놀이를 통해 누구나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놀이터는
놀이의 평등을 실현하는 장소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놀이터는 놀이의 평등을 실현하는 장소일까? 현재 7살 딸아이를 기르며 지금까지 내가 놀이터를 방문한 횟수는 족히 오백 번은 넘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놀이터 외에도 전국에 별의별 놀이터는 다 다녀봤다. 그런데 장애 아동을 마주한 적은 다섯 번 남짓이다. 이유가 궁금해서 약 150명의 장애 아동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실제로 이들은 놀이터를 잘 방문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놀이터에 있는 부모들의 눈 따가운 시선이었고, 둘째로 비장애인 아이들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문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한가한 시간대를 선호했다. 시설에 대한 개선은 세 번째였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면 가고 싶지 않다. 마음이 편하면 시설은 조금 낙후되었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발달장애 아이들 중 탠트럼 tantrum 이 오는 경우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어려움을 겪게 된 상황에 다시 적응해 보는 반복적인 도전이 중요한데, 일단 아이가 소리를 지르게 되면 부모들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 자리를 뜨게 된다. 이때 주변사람들은 과도하게 주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약 150명의 장애아동 부모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놀이를 위해 방문한 외부공간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 <놀이>


포용적인 놀이터의 요소들


01 규칙성과 자율성의 조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포용적인 놀이터 디자인은 어떤 요소들을 갖춰야 할까? 첫째는 규칙성과 자율성의 조화다. 시소, 미끄럼틀, 그네 등으로 구성된 놀이 기구들은 규칙이 존재한다. 차례를 기다리고 순서를 지켜 올라가고, 내려가는 등 보통은 일정한 방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규칙적인 것들을 참으며 기다리기 어려운 발달장애 아이들의 경우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기구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방향이 완전히 자유롭다거나, 규칙과는 전혀 관계없이 아이들의 마음대로 변형 또는 생성이 가능한 요소들을 공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Play for All 전시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든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도록 디자인함과 동시에, 구석에는 규칙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촉감 놀이 공간이 있다


02 규칙은 충분히 시각적인 설명으로

또한 규칙은 충분히 쉬운 시각적인 설명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정한 방향이 필요한 기구에는 커다란 화살표, 기다려야 하는 곳에는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동그라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곳에는 점선 등 바닥을 활용한 그래픽도 좋은 요소다. 학습이 느린 아이들은 문자적인 요소보다 도형이나 기호를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자폐성 장애 아동의 부모가 코로나 시기에 놀이터에 그려진 거리 두기 원 덕분에 자신의 자녀가 훨씬 참을성 있게 잘 기다렸다는 의견을 주었다.

글이나 말로 설명해 주는 것보다 명쾌한 시각적인 요소가 아이들에게 규칙을 설명하기에 훨씬 용이하다.©Possessed Photography  


03 신체적 차이에 대한 반영

공간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신체적인 차이에 대한 반영 역시 중요하다. 아이들의 신체적, 정서적 발달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우리가 만났던 한 아이는 나이는 8살이었지만, 뇌병변 장애로 아직 키가 작고 걷거나 뛰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따라서 때로는 놀이터 안에 기어 다니면서 놀 수 있는 작은 공간도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이 동일하지 않다. 누군가는 여러 원인들로 조금은 느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션잇

04 시선으로부터 자유와 평범함

마지막으로 시선으로부터 자유다. 나 역시도 장애 아동의 부모님들을 인터뷰하기 전까지 장애 아동을 고려한 놀이터는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휠체어 이용 아동만을 위한’, ‘시각장애인 아동만을 위한’ 기구로 한정 지어 고안하게 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 아이가 놀이 기구를 타고 있는 데 커다란 장애인 마크가 붙여져 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면? 사실 더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장애 아동이나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평범한 대우’를 원한다는 것이다. 평등은 특별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평범함에서 나온 다는 것을 기억하자.

©미션잇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누구나 동일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기구를 이용하는 특성에서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사진 속에 발달장애 아이들과 비장애 아이들이 정확히 반반씩 섞여 있는데 아이들 간 상호작용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놀았다. 실제로 Play for All 전시에서 장애아동 부모님들은 "누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 아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마음이 한결 편안했어요"라는 의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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