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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Feb 14. 2024

유아특수교사 n년차,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동학대 조사라니

유치원을 통해 신고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그토록 내가 궁금해하던 신고기관은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었다.

해당 기관에서는 일주일 후에 유치원에 방문할 예정이며 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나를 변호할 수 있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어떤 부분을 변호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걸 모르니 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정이는 우리 반에서 참 사랑받는 아이였다.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냐만은 유정이는 유독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원활한 편이었다. 그 당시 유정이는 이사로 인해 타 유치원으로 전학을 앞둔 상황이었다. 내가 신고를 당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진학상담을 하며 어머님이 우셨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 아쉬운 마음에 전학이 고민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런 어머님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 내가 가장 마음 아팠던 건 학부모님이 날 신고했다는 사실보다 그 간의 상처를 담임인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학부모님께 의지할 존재가 되지 못했음이 죄송스러웠다.


유정이는 내가 2년을 봐온 아이였다. 2년 동안 기록해 둔 놀이 일지와 개별 안내문들을 정리하는 일을 일주일 동안 했다. 2년 간의 기록은 생각보다 많아서 하루 온종일 이 일에만 매진한 결과 일주일 안에 겨우 끝낼 수 있었다.


그동안 난 매일을 울었다. 아니 틈만 나면 울었다. 하루 일과가 정리된 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 날이었을까? 저 날이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유정이에게 상처를 준 날이 도대체 언제였을까.' 머릿속에 이 생각만 가득했다. 일주일 동안 나는 5kg이 넘게 빠졌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가끔 잠을 자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지는지 궁금했었는데 일주일 정도 잠을 안 자도 살아진다는 걸 몸소 체험해 보고 알게 되었다. 나는 매일 꼬박 밤을 새웠고 항상 숨죽여 울었다.


조사가 진행되던 날도 유정이는 유치원에 등원했다. 학부모님께서는 학대로 의심되는 교사가 있는 유치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계속 보내셨다. 덕분에 방학중 방과 후 과정 학급을 운영하시던 선생님들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작은 상처 하나라도 날까 노심초사하셨고 하루하루 살얼음과 같은 날들을 보내셨다. 나는 특수학급 방과 후 과정을 맡아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항상 사랑으로 대해주심을 알지만 아이들 한 번 더 안아주시고 토닥여달라고 부탁의 메시지를 남기고 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조사는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유정이가 다친 날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1. 유정이를 마음 다해 반겨주지 않았다.

2. 올라오는 사진이 예쁘지 않다.

사소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아동학대와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 말이다.


눈물의 조사가 끝난 후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측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진짜 애쓰시네요..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모든 유치원 선생님들이 다 그러시나요?"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이, 나보고 너무 모든 일에 애쓰진 말았으면 좋겠단다.

나보고 뭘 어떡하라는 건지.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조사를 받을 때도 펑펑 울었지만 교무실에 들어오니 더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런 조사를 받게 된 것도 힘들었고 준비하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다. 조사를 받고 나서도 이해가 잘 안 됐다.

‘학부모님은 왜 나를 신고하셨을까? 그 정도의 신뢰관계가 안 됐던 걸까?'


함께 보낸 2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조사 내용을 관리자 분들께 말씀드리며 학급의 사소한 일은 학부모님께서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유정이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워 나와 눈빛으로 교감하는 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땐 그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내 삶이 너무 피폐해졌고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이의 조부모님께서는 하원 때 정문 앞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학대 교사 있는 유치원이에요. 세상에 이런 유치원이 다 있어?"


조사를 받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상처는 쌓이고 또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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