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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Feb 16. 2024

유아특수교사가 뭐 하는 사람인데요?

예 설명 들어갑니다.

소개팅이나 동호회 등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지겹도록 받는 질문이 있다.

"유아특수교사? 그게 정확히.."

이럴 때 나는 최대한 친절한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교 다닐 때 도움반이라고 불리는 학급 없었어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아, 그 장애가 있는..?"의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더욱더 친절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장애를 가졌거나 혹은 장애를 가질 위험이 있는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 친구들을 특수교육대상자라고 하고요. 그중에서도 전 유아 시기의 아이들을 가르쳐서 유치원 특수학급에 있어요."


조금 세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유아특수교사는 특수교육대상유아의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교육 안에 녹여내는 역할을 한다. 개별화교육계획이란 장애유형, 특성 등에 적합한 개별적인 교육계획을 말한다. 이 계획 안에는 교육목표, 교육내용 등 꼭 들어가야 하는 사항들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특수교육은 굉장히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특수교육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명 한 명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개념에서 특수교육이 곧 미래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건 이제 아무런 일도 아니다. 사람을 봐가며 좀 더 자세하게 말할지 적당히 말할지 생각할 수 있는 눈치도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 속상할 때가 있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이나 관리자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내가 말하는 느낌은, 위에 적은 내용들을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다. 이들은 내가 하는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이 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잘 아는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힘들겠다."


물론 힘든 거 맞지만 힘듦 없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특수교사가 느끼는 힘듦이나 다른 직업에서 느끼는 힘듦이나 결이 달라서 그렇지 그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이 일 말고 다른 일은 안 해봐서 모르겠다.


나는 내가 느낀 묘한 감정이 여기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1년 차 때 깨달았다. 특수교사를 처음 접해서 신기해하는 시선보다 그냥 힘든 직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특수교육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동료장학 수업이 있던 날 우리 반의 나이스함을 모든 선생님들에게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그 포부는 사전 활동으로 명화를 감상한 후 관련된 게임활동을 공개하는 것으로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당시 생활주제와 관련된 명화는 신사임당의 초충도-수박과 나비였다.

지금 생각하니 간도 크다.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인 명화를 공개수업 주제로 잡다니.


내가 계획한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았다.

1. 얘들아 우리가 교실에서 감상했던 초충도 그림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

2. 앗?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그림 안에 있었던 수박이 없어졌잖아? 어디로 간 거야!

3. 아니? 교실 바닥에 있는 이건.. 쥐들의 발자국?? 쥐들이 수박을 들고 간 거 아니야?

4. 발자국을 따라 너희들이 수박을 찾아줄 수 있겠니?

5. 수박을 찾아와 빈 그림에 붙이면 초충도 그림이 짜잔 완성!


이 활동은 일단 선생님의 엄청난 연기력을 필요로 했다. 여기서부터 쉽지 않았음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 어머! 호들갑을 떨며 연기하는 것.. 정말 쉽지 않았다.


평소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고려해서 수박모형을 숨겨 놨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수박이 숨겨진 곳에는 쥐들이 만들었을법한 덤불도 붙여놓았다. 어쨌든 쥐 발자국 모양을 따라가면 무조건 수박을 찾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형식의 게임은 종종 했었던 터라 아이들이 잘 해낼 거란 믿음이 있었다.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이들은 교실에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상황을 낯설어했지만 선생님들의 관심과 응원을 점차 즐기기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심지어 그날따라 아주 잘 앉아있었다.


대망의 마지막 은찬(가명)이 차례!

은찬이만 잘 마무리해 주면 내가 생각한 수업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은찬이가 게임에 너무 몰입해 버린 것이다. 은찬이는 수박을 찾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교실의 모든 교구장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아야 할 수박을 모두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윽고 잘 앉아있던 다른 친구들도 질세라 벌떡 일어나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수박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어쨌든 수업은 마쳐야 했다. 특수교육 실무사님과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명씩 데려와 자리에 앉혔다. 계획한 대로 수업을 마무리하기에는 이미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황이었다.


뛰쳐나가고 싶어 드릉 드릉거리는 눈동자들을 보고 있자니 이 상황이 웃겨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망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빨리 수업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후다닥 수업을 마무리했다.  


선생님들이 모두 나가신 후 아이들과 함께 어지럽혀진 교실을 정리했다.

"마지막에 갑자기 뭐야? 근데 좀 웃겼다 얘들아."

수박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좀 많이 붙여 놓을 걸 그랬다.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동료장학 평가회가 이루어졌다.

먼저 내가 한 수업에 대해 자기 평가를 한 후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내 수업에 이토록 적극적인 피드백이 오고 가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사실 그중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근데 은찬이 왜 이렇게 웃겨? 벼래반 애들 웃기더라. 교구장 뒤지는데 너무 웃기고 귀여운 거야. 그 게임을 이해하고 더 찾아보려고 하는 게."


"아~ 오늘 매력 있었다. 벼래반."


이것이야말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우리 반의 모습이었다.

조금은 서툴러도 얼마나 재밌고 사랑스러운가!

수업에 잘 참여하고 많은 정답을 맞히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저 수업을 잘 이끌어서 '우리 반 친구들이 이렇게 잘한다고요!' 보여주기 급급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이 '힘들겠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구나.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안 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더 많이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개수업을 마치고 내가 우리 반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른 동료 선생님들도 느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비록 내가 생각한 나이스함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날 우리 반은 나이스했다. 실제로 이 공개수업이 끝난 후 동료 선생님들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아특수교사는 단순히 개별적 교육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교육의 방향성을 보여주어 통합교육과 특수교육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역할 또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그림을 가지고 나름대로 놀이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수박 더 가지고 왔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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