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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Feb 21. 2024

오늘의 미션은?

찰칵! 찰칵!

주영(가명)이는 만 5세 통합학급 아이로 조용하지만 언제나 야무지게 자신의 일을 잘하는 아이다.

그런 주영이는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벼래반 담임교사인 나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투명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눈에 분명히 보인다. 귀엽게도 주영이는 나를 정말 좋아했다.

사람의 결, 주영이와 나는 그 결이 비슷했다. 그래서 날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통합학급 담임선생님께서 장난스레 이런 말을 하실 정도였다.

"주영이 진짜 선생님 껌딱지라니까? 담임은 난데~~"


만 5세 통합학급 지원을 나가는 날이면 주영이는 언제나 내 곁을 맴돌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 5세 벼래반 친구인 상현(가명)이와 주영이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역통합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영이는 벼래반에 와서도 참 잘 지냈다. 웃긴 건 주영이도 나도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우리는 서로 그렇게 많은 말들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치면 서로를 바라보며 잘 웃었다.


*역통합 활동: 특수학급에 통합학급 아이들을 초대해서 함께 놀이하는 활동을 말한다. 놀이를 할 때도 있고 특별한 활동을 할 때도 있다. 소수로 초대를 할 때도 있고 모든 친구들을 초대할 때도 있다. 통합학급-특수학급 간 운영은 구성원 간 협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자율적이고 유동적인 편이다.


그런 주영이가 졸업을 했다. 통합학급에서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던 주영이가 졸업을!

주영이는 졸업을 하고 유치원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오며 가며 주영이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볼 수는 없었다.


유치원은 또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학부모님과 함께하는 행사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유치원 행사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주영이 어머님이었다.

그 유치원 행사에는 유치원에 재원 중인 유아의 학부모 외에 다른 가족 한 명이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형제자매, 조부모님 등이다. 그때 당시 주영이의 사촌동생 윤형(가명)이가 우리 유치원에 재원 중이었는데 주영이 어머님은 그 사촌동생의 이모로 오신 것이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주영이가 선생님을 엄청 보고 싶어 했어요. 오늘 행사도 윤형이네 한 명 더 갈 수 있다니까 주영이가 저보고 꼭 가라고 해서 왔어요. 선생님 잘 지내는지 보고 오래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 너무 잘 지내죠! 주영이 초등학교 가서 잘 지내고 있죠? 저도 주영이 보고 싶은데 유치원에 놀러 오라고 전해주세요!"


"그건 또 부끄러워서 혼자는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주영이 웃기죠? 그리고 저 오늘 선생님이랑 사진 찍어가야 해요. 주영이 미션이에요."


주영이는 정말 웃기게도 엄마에게 미션을 내렸다.

미션은 바로 나와 사진을 찍어오는 것.

깔깔거리면서 어머님과 셀카를 찍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 반 아이도 아니고 통합학급 아이 학부모님과 사진 찍을 수 있는 특수교사가 몇이나 될까?

통합학급 아이가 날 기억해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정말 복 받은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일주일 후 주영이가 유치원을 찾아왔다.

예상 가능하듯 조심스럽고 조금은 부끄러운 얼굴로.

이제는 완벽한 초등학생이 된 주영이와 유치원생일 때는 나누지 못했던 나름 심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복 받은 교사가 맞다.

그날 나는 통합학급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사가 되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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