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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Feb 02. 2024

안녕 귀여운 내 친구들아!

웃으며 안녕

1-2월 빠르면 12월은 졸업식 시즌이다.

유치원에서는 보통 한 달 전부터 졸업식을 준비하는데 그 해에는 벼래반 친구들 4명 중 3명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유치원 특수학급은 보통 한 유치원에 1~2개의 학급이 있어 연령별로 구성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대부분 혼합연령으로 구성되다 보니 유아특수교사는 만 3세 입학부터 만 5세 졸업까지 한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쭉 함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벼래반은 그 유치원에 하나뿐인 특수학급으로 만 3세~만 5세 혼합연령으로 구성이 되어있었다.


그 당시 졸업하던 친구들은 내가 신규교사일 때부터 2년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었다. 2년을 함께 성장하고 자라온 동지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졸업하던 해에 유치원에서는 각 학급별 특색이 있는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당에 모두 모여 진행하는 졸업식이 아닌 학급 자치로 이루어지는 졸업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졸업식 준비를 다른 원들보다 빠르게 시작했다.


벼래반 친구들은 모두 한 반에 소속이 되어있어 나는 통합학급 선생님과 함께 졸업식을 준비했다. 통합학급에서는 졸업식장인 소강당을 어떻게 꾸밀지, 졸업식 순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모든 것을 함께 정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의견을 내고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졸업식 구성에는 많은 의견이 나왔다.

1. 졸업식 현수막을 만들자.

2. 장래희망을 그려보자.

3.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사진전을 열자.

4. 부모님께 감사장을 드리자.

5. 사회를 우리가 직접 보자.

이 밖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나와 벼래반 친구들도 열심히 투표를 했다.


투표 결과!

1번 졸업식 현수막, 3번 사진전, 4번 감사장이 채택되었다.


7살 아이들이 이렇게 자주적일 수 있다니.

나는 아이들의 자치활동에 놀라고 4번 감사장이 뽑힌 것에 한번 더 놀랐다. 놀랐다기보단 '어떡하지?'라는 걱정의 마음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왜냐하면 벼래반 아이들의 언어 수준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었다.

'감사장 이름을 정하고 부모님께 읽어주자는데 이걸 우리 반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벼래반 친구들 감사장 어떡하죠...?"

"괜찮아~~ 우리 반에 있는 애들 중에도 읽고 쓰는 거 어려워하는 친구들 많잖아요. 감사장은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으로 갑시다요."


감사장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벼래반 친구들의 졸업식 예행연습이 시작되었다.


나와 통합학급 선생님은 감사장 예시안을 먼저 만들었다. 통합학급에도 글쓰기를 어려워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시안을 보고 응용해서 만들거나 예시안과 똑같이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시안.

그러나 이 예시안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착석이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앉아있는 연습이 필요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평소 동화책을 읽거나 이야기 나누기 등의 활동을 할 때 앉아있는 습관이 잘 되어있었다. 활동에 비해 졸업식 시간이 길긴 하겠지만 좋아하는 캐릭터나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정도는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바로 감사장 읽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무려 졸업식이 있기 두 달 전부터!

나는 점심을 먹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에 그 감사장을 매일 읽어주었다. 흥미를 가지는 친구도 있었고 흥미가 아예 없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꿋꿋이 교실 벽에도 붙여놓고 동요에 가사를 바꾸어 불러보기도 했다. 그 두 달 동안 감사장을 얼마나 많이 읽고 가지고 놀았는지 이면지함을 뒤져도 감사장 예시안이 나올 정도였다.


드디어 다가온 졸업식 날.

소강당 입구에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환영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그리고 벽면에는 아이들이 직접 고른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학부모님들께서는 조금 어수선하지만 아이들의 손길이 담긴 졸업식장을 둘러보시며 즐거워하셨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모든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놀잇감을 쥐어주면 잘 앉아있을 거란 나의 예상을 깨고 벼래반 친구들은 소강당을 그야말로 활보하며 돌아다녔다. 나와 학부모님들은 벼래반 친구들을 각자 맡아 잡으러 다니기 바빴다.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졸업식 또한 정신없이 진행되어서 웃기게도 벼래반의 일탈이 그리 티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감사장을 읽는 시간이 되자 벼래반 아이들이 모두 귀신같이 제자리에 착석했다.

'뭐야.. 왜 갑자기 잘하고 그래. 불안하게!'

갑자기 잘하니까 왠지 모르게 불안한 이 마음. 이런 내 마음을 알기는 하는지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웃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가 쓴 감사장을 읽어 내려갔고 벼래반 친구들의 순서도 돌아왔다.

언어가 유창했던 친구는 자신만의 속도로 한 글자 한 글자씩 마음을 담아 감사장을 읽었다. 또 단어 수준의 모방을 하는 친구와 한 글자씩 끊어 읽는 친구는 내 목소리를 따라 읽어 내려갔다. 벼래반 학부모님들은 감사장을 받고 모두 눈가에 눈물이 맺히셨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다며 걱정하셨다. 나도 그 걱정을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여주셨다.


졸업식은 가장 늦게 끝났지만 그래도 모두가 행복했던 날이었다.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그날 처음 뵌 벼래반 아이의 조부모님께서 내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그저 감사해요."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에요 할아버님. 효은(가명)이는 앞으로도 잘 성장할 거예요."


집에 돌아와 벼래반 학부모님께서 주신 꽃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필 선생님이 처음인 사람을 선생님으로 만나 아이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

2년 동안 성장해 온 아이들이 새삼 대견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성장한다.

'내가 그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까?'

아이들의 졸업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별 거 없는 내 존재가 아이들에게 기댈 곳, 쉬어갈 곳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과 첫 번째 안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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