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래 Jan 24. 2024

불행은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

갑자기 쿵, 하고

방학 중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간 이번 가족여행은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위로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행복했던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 알람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원장 선생님과 통합학급 선생님이었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이 연락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차 안에서 전화를 하다 갓길에 세우고 나만 나와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선생님 유정(가명)이 아빠가 전화가 왔는데 유정이 다쳤을 때 상황을 CCTV로 보고 싶으시대. CCTV는 절차를 거쳐 볼 수 있다고 말씀은 드려놨는데 계속 신고를 하겠다고 그러시네. 아무래도 선생님이 전화를 한 번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유정이 다쳤을 때 일.

유치원에 다닐 때 유정이가 다쳤던 적이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하원하기 전까지 확인하지 못했던 상처였는데 몇 시간 후 집에서 상처가 발견되어 어머님께서 문의주신적이 있었다. 내 생각에도 큰 상처라 여겨져 나도 놀란 상태로 상황을 확인해 본 결과 유치원에서는 확인된 바가 없었다. 나는 상황을 전달드리고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유정이를 많이 안아달라 말씀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주말 동안 잘 나아서 가겠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유치원에서 발견은 하지 못했지만 원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기에, 사고는 어른의 눈 밖에서도 일어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님께 공감해 드리며 앞으로 더 살펴보겠다 약속드리는 일 밖에 없었다.


어머님께서는 주말이 지난 후 유치원을 찾아오셔서 원감 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하셨다. 통합학급 선생님과 나의 대처가 미온했고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 속상했다고 하셨다. 그날 오후, 원감선생님과 통합학급 선생님, 나 이렇게 세 명은 이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모님의 속상한 마음을 더 공감해 드렸으면 좋았을걸..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 줄 알았던 일이었다. 심지어 이건 한 학기도 더 지난 일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유정이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 유정이 담임교사입니다. 유치원으로 전화 주셨다는 이야기 듣고 전화드렸습니다. CCTV를 보자고 하셨다고.. 맞으실까요?"


유정이 아버님은 격앙되었지만 차분한 어투로 이야기하셨다.

"네 저 유정이 아빠 됩니다. 그때 CCTV를 볼 수 있을까요?"

"아버님 자세한 사항은 행정실에 문의드려 봐야겠지만 폐기 기한이 지나 보실 수 없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이유로 보시고자 하시는지 이야기를 해주시면 제가 전후 상황을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유정이 아버님께서 할 말만 전달하시고 끊으셨기 때문이다.

유정이 다쳤을 때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고 날 어딘가에 신고했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일방적 전달이었다. 그리고 지금 전화할 상황이 안되니 내일 다시 전화하자며 시간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날 신고했다고? 대체 왜?' 전화통화를 통해 내가 알게 된 정보는 '날 신고했다' 뿐이었다.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을게 뻔해 차 안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날 걱정스러워하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며 눈물을 꾹 참았다. 가족 여행의 마지막은 침묵 속에서 집에 돌아가는 걸로 마무리가 됐다.


다음 날이 되어 약속된 시간에 유정이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께서는 바쁘신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10분 후, 30분 후에 전화를 드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연결된 전화에서는 지금 전화가 어려우니 나중에 전화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께서는 처음 들어보는 나지막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그렇게 됐어요. 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생각돼서 기관의 힘을 빌리기로 했어요. 상황이 정리되면 기관을 통해 유치원이든 선생님이든.. 연락이 갈 거예요. 선생님께 드릴 말씀은 없고요. 상황이 어렵게 됐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이 전화도 짧게 끝났다. 유정이 어머님께서도 할 말만 전달하고 끊으셨기 때문이다.


이후 아버님께 문자 한 통이 왔다.

너무 끔찍한 기억이라 시간이 지난 후 문자를 삭제한 바람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유정이가 유치원에서 받은 상처와 유정이를 장애아동이라는 이유로 차별한 일이 사실인지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으니 신고기관을 통해 연락받으세요. 연락은 그만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왜 신고를 당했는지, 어디에 신고를 당했는지도 모른 채 아동 학대 교사가 됐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의학과에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