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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Feb 05. 2024

넌 이제 담임이란다.

제가요??

드디어 발령이 났다.


2월의 어느 날, 신규교사 임명장을 받으며 발령받은 유치원에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되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웃는 얼굴의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이곳의 일원이 되는구나 하는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날은 특수학급을 맡으셨던 담임선생님과 특수교육대상유아 학부모님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던 날이었다. 관리자 분들은 마침 잘 되었다며 학부모님들께 나를 소개해주셨다. 또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학부모님들께 지금 많이 여쭈어보라고 하셨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사실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얼른 인사만 하고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뭘 또 여쭤보라니. 머리를 쥐어 짜내서 새 학기에 필요할 것 같은 아이들의 특성을 더듬더듬 여쭈어보았다. 돌아온 학부모님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학부모님들이 보시기에 아니 누가 봐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교사였다. 학부모님들과의 만남이 끝난 후 전임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은아(가명) 어머님께서 유치원 전학을 고려하고 싶으시대요. 그전에도 고려하셨던 부분인데 조금 더 고민이 되시나 봐요."

은아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하셨던 분이었다. 나 때문에 유치원 전학을 고려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씁쓸했다. 전임 선생님께서는 은아 어머님께서 유치원을 다니는 도중에 담임교사가 바뀌는 것을 염려하셨다고 전해주셨다.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서 전달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했지만 상처는 이미 받았다.


'날 오늘 처음 봤으면서 뭘 보고 판단한 거지? 고작 30분 본 걸로?'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아니야, 처음부터 날 못 미더워하는 학부모님이라면 앞으로가 더 힘들 수도 있어. 난 나머지 아이들과 끝내주는 유치원 생활을 하겠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속상한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가서 혼자 있게 되는 밤이면 이 날의 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렇게 3월이 되기도 전에 사회생활의 처절함을 느꼈다. 은아는 전임 선생님이 가신 유치원을 따라 전학을 갔다. 이후 나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신규의 패기로 넘쳐났다. 이제와 생각하니 가진 것이라곤 열정과 패기밖에 없던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도 유치원을 떠나지 않은 나머지 학부모님들께 감사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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