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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Jan 17. 2024

꿈의 기록

행복의 모양

나는 어린 시절 사회성이 좋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전학 온 아이의 첫 번째 짝꿍으로 항상 나를 붙여주셨다. 때로는 그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주어진 일은 착실히 해야만 했다.

또 나는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는 편에 속했고 노래 부르는 것,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대체적으로 시키는 것은 다 잘 해내는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말하기 싫은 비밀이 있었다.


그건 바로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야 이런저런 꿈들이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꿈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그 시기가 나에게는 조금 빨리 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꿈을 물어보는 걸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공부머리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종합해 보니 이게 가장 어른들 마음에 들 것 같은 무난한 답변이었다. 그때부터 내 꿈은 선생님이 됐다. 물론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난 그 대답을 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 찔렸다.


꿈에 대해 거짓말을 하던 어린이는 여전히 꿈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청소년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과 다름없는 중학교 시절을 보내며 꿈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한 가지 가치관이 생겼다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던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교 특수 선생님과 친하셨다. 그래서 우리 반은 통합학급이 아닌데도 수학여행에서  특수학급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특수학급 아이가 특수 선생님 이름을 계속 불렀다.

"@@@ 선생님~"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족히 50번은 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답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였다. "응 ㅇㅇ아~"하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행복이 보였다. 나의 꿈은 그때 찾아왔다.


사실 수학여행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 선생님이 특수교사라는 것도 수학여행 이후에 알게 된 일이다. 그만큼 난 특수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로 내 꿈은 특수교사가 됐다. 특수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지 등등 여러 질문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발견한 그날의 행복이었다.


나에게 꿈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행복이라는 모양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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