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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Jan 18. 2024

처음은 누구나 있어

그리고 그 처음은 깨달음을 주지

입학식 날, 정문에서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우리 반 아이를 맞이하는 일로 나의 첫 업무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진정한 유아특수교사가 된 것이다.


내가 근무하게 된 유치원은 형식적인 입학식 대신 음악과 놀이로 풀어나가는 입학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에 입학식이란 걸 해봤어야 알지. 나는 입학식이 이렇게 정신없는 행사인 것을 처음 알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회가 진행되어도, 재밌는 놀잇감이 넘쳐나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엄마와 헤어진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날 나는 방송장비와 음향을 체크하며 입학식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업무를 맡았다. 눈으로 아이들을 좇으며 방송장비까지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수교육실무사님이 아이들과 같이 계시긴 했지만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입학식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문제는 집에 가는 시간에 생겼다.

한 명씩 학부모님께 아이를 인계하며 인사하는데 벼래반 수현이(가명) 어머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 수현이 신발이 바뀐 것 같아서요."

수현이의 신발이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 똑같은 신발인데 사이즈가 달랐다.

"아.. 어머니 어떤 친구와 바뀌었는지 한 번 확인해 볼게요."라고 말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교무실에 들어와 쭈뼛쭈뼛 말을 했다.

"선생님들.. 저희 반 아이 신발이 바뀌었다는데 혹시 신발 바뀌었다는 연락받으신 선생님 없으신가요?"

선생님들은 입학식이 끝나고 학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리느라 모두 바쁘셨다. 질문은 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그 대답을 기다릴 수 없어 수현이 어머님께 다시 갔다.

"어머니, 오늘은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간 상황이라 일단 바뀐 신발을 신고 하원해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아이들이 유치원에 오면 신발 한 번씩 살펴봐달라고 선생님들께 말씀드릴게요. 신발 찾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

 

이 이야기를 통합학급 선생님께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신발장을 같이 사용하니 바꿔 신고 간 아이가 같은 반일 경우가 높다고 생각해서였다. 또 통합학급 아이의 일인데 담임 선생님이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합학급 선생님은 별 일 아니라는 말투로 "아 진짜요?"라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신발은 찾았어요?"는 묻지 않으셨다.

더 묻지 않으시기에 나도 더 말하지 않았지만 왜 궁금해하지 않으시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우리 반 아이라는 인식이 덜 해서 그런 건가? 아님 정말 바쁘셔서? 내가 알아서 했으려니 하고 생각하시나?'

이유가 어쨌든 왠지 모르게 혼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잃어버린 신발은 돌아왔다. 신발을 바꿔 신은 아이의 학부모님이 신발을 가방에 넣어 보내주셨다.

"선생님! 수현이 신발 찾았어요!! 아 옆반 진아가 신고 갔더라고요."

신발을 들고 나에게 통통 달려오시는 통합학급 선생님을 보는데 혼자 서운했던 마음이 싹 녹아내렸다. 나의 서운함은 괜한 마음이었다.


"저 진짜 어머니한테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서 버벅거렸어요."

"아니야. 얘기 들어보니까 선생님 잘했어요. 그렇게 하면 돼요."

그날 교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통합학급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통합학급을 처음 맡아보신다고 하셨고 아이들이 신발을 바꿔 신고 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3월의 첫 주, '특수교사는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그 서운함은 나만의 것일 수 있으니 동료 선생님들과 많은 소통이 필요하겠구나'라는 것도.


직장생활에 소통이 필요함을 느낀 첫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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