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날은 만 3세 통합학급이 현장체험학습을 나가는 날이었다.
유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지만 외부로 나간다는 것 자체로 교사들은 긴장 상태가 된다.
주호(가명)는 아직 말문이 완전히 트이지는 않아 단어 수준으로 모방하여 말한다. 그마저도 어른이 모방을 유도할 때 말을 하는 편이고 자발화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묵묵한 친구다. 그런 주호는 옷을 참 잘 입는다. 여기서 '잘 입는다'란 유치원 활동을 하기 편안한 복장을 하고 온다는 뜻이다. 주호가 잘 입는다기보단 주호 어머님께서 잘 입혀 보내주신다. 그러나 옷은 매번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운동화다.
주호가 즐겨 신는 운동화는 상당히 클래식한 체크무늬 아이템으로 나도 한 켤레 가지고 있다. 종종 나의 일방적인 계획으로 같은 운동화를 신고 오는 날이 있기도 했다. 주호는 현장체험학습 날에도 그 신발을 신고 왔다.
나는 주호가 신발을 신고 줄 선 것을 확인한 후 교사 신발장에 가서 신발을 꺼내왔다. 그런데 신발을 꺼내고 돌아보니 주호가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후다닥 달려갔다.
달려간 곳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다.
나와 주호가 가지고 있는 그 운동화였다.
그렇다. 주호는 내 신발을 꺼내둔 것이었다. 내가 신발을 가지러 간 사이에 우리가 가진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를 어린이 신발장에서 찾아 가져다 둔 것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신발장에 나란히 놓인 똑같은 운동화 세 켤레는 분명 사랑이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주호를 꽉 안아주었다.
"너 선생님 운동화 챙겨준 거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감격에 겨워 재잘재잘 떠드는 나와 달리 주호는 또 묵묵함으로 일관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는 CM송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주호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 포옹에 어리둥절한 주호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현장체험학습은 무사히 잘 마쳤다. 나는 이걸 커플 신발의 힘이라고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