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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Jan 19. 2024

커플 신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날은 만 3세 통합학급이 현장체험학습을 나가는 날이었다.

유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지만 외부로 나간다는 것 자체로 교사들은 긴장 상태가 된다.


주호(가명)는 아직 말문이 완전히 트이지는 않아 단어 수준으로 모방하여 말한다. 그마저도 어른이 모방을 유도할 때 말을 하는 편이고 자발화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묵묵한 친구다. 그런 주호는 옷을 참 잘 입는다. 여기서 '잘 입는다'란 유치원 활동을 하기 편안한 복장을 하고 온다는 뜻이다. 주호가 잘 입는다기보단 주호 어머님께서 잘 입혀 보내주신다. 그러나 옷은 매번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운동화다.


주호가 즐겨 신는 운동화는 상당히 클래식한 체크무늬 아이템으로 나도 한 켤레 가지고 있다. 종종 나의 일방적인 계획으로 같은 운동화를 신고 오는 날이 있기도 했다. 주호는 현장체험학습 날에도 그 신발을 신고 왔다.

나는 주호가 신발을 신고 줄 선 것을 확인한 후 교사 신발장에 가서 신발을 꺼내왔다. 그런데 신발을 꺼내고 돌아보니 주호가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후다닥 달려갔다.


달려간 곳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운동화 켤레가 있었다.

나와 주호가 가지고 있는 운동화였다.

그렇다. 주호는 내 신발을 꺼내둔 것이었다. 내가 신발을 가지러 간 사이에 우리가 가진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를 어린이 신발장에서 찾아 가져다 둔 것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신발장에 나란히 놓인 똑같은 운동화 세 켤레는 분명 사랑이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주호를 꽉 안아주었다.

"너 선생님 운동화 챙겨준 거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감격에 겨워 재잘재잘 떠드는 나와 달리 주호는 또 묵묵함으로 일관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는 CM송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주호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 포옹에 어리둥절한 주호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현장체험학습은 무사히 잘 마쳤다. 나는 이걸 커플 신발의 힘이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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