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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Jan 22. 2024

선생님은 집에 언제 가?

선생님 집에 안 간다-

하나(가명)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고 꽤 어려운 연산도 할 수 있다. 가끔은 선생님들과 농담도 주고받는 유치원에서 보기 드문 어린이다.

그런 하나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선생님 몇 시 몇 분 몇 초에 엄마 와요?"이다. 


하나는 이 말을 하루에 열 번도 넘게 한다. 

가방을 정리하다가도, 점심을 먹는 도중에도, 즐겁게 놀이를 하다가도 이 질문을 한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면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엄마를 찾는 하나를 보며 '유치원이라는 공간이 하나에게 불안한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런데 하나는 유치원에 등원할 때 엄마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헤어지는 아이였다. 때문에 유치원이 불안하다던가 정말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유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를 관찰하고 하나가 질문을 하는 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일주일 정도 하나의 질문 패턴을 기록해 본 후 살펴보니 그 기록에 답이 있었다.

하나는 싫어하는 자극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물어보는 약간의 회피형 어린이였던 것이다. 하나가 싫어하는 자극이란 주로 정리와 전이였다. 전이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정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굳이 따지자면 하나는 정리를 매우 싫어하는 어린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가방을 정리하는 것, 점심을 먹고 식판을 정리하는 것, 놀잇감을 정리하는 것. 하나가 하는 모든 질문의 공통점은 정리에 있었다. 정리를 하기 싫어서 괜히 시간을 물어본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하나가 불안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감사했고 또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하나의 질문은 생각보다 빨리 소거됐다. 

정리시간이 너무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정리 영역을 정해준다거나 타이머를 틀어 게임처럼 정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니 하나의 질문 빈도가 줄어갔다.


부작용이 생겼다면 내가 하나의 행동을 바꿔보려고 하거나 통제해 보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하나가 눈치챘다는 점이다. '이 어른이 내가 이렇게 질문하는 의도를 알고 날 바꿔보려고 하네?'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때부터 하나는 내 의도를 다 안다는 듯한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선생님은 집에 언제 가?"

이 말은 곤란한 상황이 오면 화제를 돌리기 위한 하나의 필살기가 되었다.  

 

그러면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어~ 선생님 집에 안 가려고~"


1년이 지난 후 초등학교로 진학한 하나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하나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근데 선생님은 집에 언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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