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지.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 임신 자체도 두려웠지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어. 네 한 몸 살아가는 데도 걱정이 한 움큼인데, 네 자식이 생기면 더 할 것 같다고 말이야. 결혼할 상대를 만나고,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어. 그러던 네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슬슬 시작하게 된 건 내가 임신 준비를 하면서였는지, 아이를 낳고 나서였는지 모르겠어. 무튼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너도 조금씩 생각이 변하는 것 같더라.
그맘때쯤 남편과 자주 다퉜다고 했던 것 같아. 너희는 결혼할 때부터 아이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던 것 같더라고. 서로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면 생각이 바뀔 거라 막연히 기대했나 봐. 그래서인지 양가 부모님뿐 아니라, 남편까지도 너의 미래에 당연히 아이가 있을 거라 단정할 때가 많았던 모양이야. 네가 아이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전에 아이를 빨리 갖네 마네로 싸웠던 걸 보면 말이야.
그러던 중 남편이 올해 안에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면서 너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어. 이번에 나가면 최소 2년은 있어야 하는데, 돌아와서 아이를 갖자니 너무 늦고, 함께 따라가 그곳에서 아이를 가지기엔 환경이 어떨지 걱정된다고 했지.
그런 너에게 난 너무 쉽게 툭하고 말했지. “일단 최대한 빨리 갖고, 애 낳고 조리원 있을 때까지만 혼자 보다가 천천히 쫓아가”라고. 서운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지 않냐 말했지. 아무래도 임신하는 데 있어 나이의 영향은 너무 크니깐 말이야. 아직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자책하는 너에게, 키우기 전까지는 나도 모성애 따위 없었다고 다그쳤어. 심지어는 그곳에서 내니를 고용하고 도움 받으면, 너도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어.
너에게 그렇게 쉽게 말하면서, 네가 원래는 아이 갖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사람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너에겐 엄청난 용기였는데,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라고 했던 거야. 그게 ‘현실’적인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내 생각이 짧았어. 너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돌이켜 생각하며, 얼마나 반성했나 몰라. 이미 나에겐 다 지난날이라 너무 많이 잊고 있었어. 임신기간 동안 느꼈던 수많은 설움, 죽을 고비를 넘겼던 출산의 공포, 아이를 낳고 난 후 최소 100일 동안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매일 열탕으로 젖병을 소독하고, 모유를 유축하고, 2시간마다 수유를 하며 단 하루도 맘도 몸도 편하지 않던 나날들을 잊고 지냈어.
그뿐이 아니었지. 임신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행여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을까 매일 걱정하고, 그나마도 좋은 병원에 가려고 신경 쓰고, 정기 검진으로 모자라 개인 병원까지 따로 하나 알아보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뺀질나게 초음파를 보러 다녔으면서…
또 아이를 낳은 후 청력 검사 재검이 떴을 때, 한쪽 발만 쓰며 기어 다닐 때, 코로나 진단을 받았을 때, 하위 8% 작은 아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 밥을 먹지 않을 때, 이유도 없이 울고 보채고 잠들지 않을 때 그 모든 순간을 걱정하고 힘들어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남편과 둘이 함께 하면서도 그렇게 한참을 헤맸었는데 말이야.
어쩜 그리도 까맣게 잊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나왔던 그 모든 ‘현실’을 떠 올리고 나니, 너에게 어깨 한번 으쓱하며 건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얼마나 부끄러웠나 몰라. 자격이 없는 건 네가 아니라 나였어. 다 까먹어 놓고는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너에게 같잖은 조언을 늘어놓았으니 말이야.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어. 네가 임신부터 출산의 모든 과정을 홀로 견디고, 그 핏덩이를 비행기에 태워 낯선 나라로 가서, 크고 작은 육아용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낮에는 출근한 남편만을 기다리며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너의 현실을 말이야.
차라리 노산이 낫겠단 생각이 들더라. 임신이 어려워 난임시술까지 가더라도. 난임시술이 쉽다는 게 아니야. 나도 시험관 시술을 해봤으니까. 매일 호르몬 주사를 놓고 신체적으로, 특히 감정적으로는 더욱 힘들었던 시간, 부작용으로 복수가 차서 입원까지 해야 했던 그 시간이 홀로 임신과 육아를 하는 시간보다 차라리 낫겠단 거야. 갑작스레 정해질 수밖에 없는 병원 일정에 내 모든 일을 맞추느라 스트레스받고, 절대 알리고 싶지 않던 난임에 대한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팀장에게 알려야만 하는 그 순간을 감수하더라도, 들리지 않는 아이 소식에 조급함이 더해지더라도, 그 모든 과정을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거야.
이건 진짜 내가 경험을 통해 느낀 건데 말이야. 맞벌이를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할 때 배우자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해. 우리에겐 마을이 없어.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하다는 그 ‘온’ 마을 말이야. 급할 때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없고, 하루 종일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동안 쌓이는 외로움을 나눌, 함께 아이를 키워내고 있는 동네 친구들이 없지.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배우자가 함께해야 해. 단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1인분을 책임져 줘야 한다고.
그러려면 배우자도 너와 함께 ‘처음부터’ 헤매야 해. 아이를 갖는 순간 모성애가 생기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엄마가 된다고 갑자기 기저귀 가는 법을 알게 되고, 새벽에 우는 아이 소리에 벌떡 일어나게 되고, 저절로 아이의 밥때를 알게 되는 게 아니거든. 너도 헤맬 수밖에 없어. 그 과정을 배우자도 함께하면서 육아에 대한 이해를 함께 키워가야 해. 몸으로 습득하는 육아 경험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 차이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더 효율적인 순간들이 쌓이면서 육아는 점점 더 한 사람의 일이 되는 거야. 그렇게 돼버리고 나면, 육아를 위해 어떤 것들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고 있는지, 그 사소한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조차 이해받기 힘들어진다. 그 시간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수밖에 없거든.
내가 덤덤히 육아를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 내가 이렇게 보이기까지, 나 혼자 만들어온 건 하나도 없었어. 남편과 함께 쩔쩔매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냈던 732일이 있었어. 아니 임신과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거진 천 일도 넘는 시간을 부부가 함께 만들어 온 거야.
홀로 그 시간을 못 견딜 것 같다는 네 말이 너무도 당연한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네가 엄마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당초 그건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의 몫이니까. 빨리 아이를 가지고 싶은 그의 바람을 따라주지 못하는 건, 주재원에 가야 하는 회사 사정이지, 결코 너의 이기심 탓이 아니야.
아이를 빨리 갖고 주재원에 함께 가던지, 일단은 함께 주재원에 가 그곳에서 가지던지, 돌아와서 가지던지, 아니면 아이를 아예 포기하던지 그중 어떤 선택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결정은 결국 너희 부부의 몫이겠지만 어떤 선택도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을 알기에,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박수 쳐 줄 거야. 그 어떤 선택 속에서도 너의 마음이 편안하길 바라.
- 2025. 7. 9. 아이를 갖겠다는 너에게
안녕하세요. Stella입니다.
<나는 비혼주의자와 결혼했다>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 <나는 육아하는 인간입니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이를 준비하는 워킹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편지 형식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 어여쁜 아가가 둘이나 찾아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덜컥 생긴 건 아니니 우리가 문을 두들겨 데려왔다고 표현해야 하는 게 맞을까요? 그렇게나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 노력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육아'라는 단어 안에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함께 내포되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저출산'이라는 사회 흐름 속에서 어느덧 '소수'가 되어가고 있는 '아이가 있는 가정', 그 안에서 마주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끔 들러 함께 생각 나눠 주세요.
오늘도 행복하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