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앞에서 시작되는 도시의 진화: 사람과 근접성을 중심으로
집 앞 거리의 이름은 Avenue de Paris다. 방센느성으로부터 파리로 향하는 2km가 안되는 길이 확 바뀌고 있다. 왕복 4차선 도로가 반으로 줄어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걷는 길 따라 다양한 식재가 줄지어 늘어섰다. 그냥 봐도 10가지 넘는 나무와 꽃들이 계절마다 다르게 피고 지겠구나 싶어, 괜히 설레기까지 한다.
전에는 유모차 끌고 걷거나 운동할 때 아니면 이런 변화가 크게 눈에 안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다르게 느껴진다. 집 대문을 나와 다섯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만나는 작은 숲 같은 공간, 그리고 그 안의 나무들이 계절마다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 어릴 때 왜 부모님이 그렇게 정성 들여 꽃과 나무를 가꾸셨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될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녹지율 몇 % 상승’이나 정책 목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분과 행복감을 높이려는 야무진 결정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과 감정,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도시 디자이너로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는 가로수를 따라 차를 타고 지나면서 ‘경관’에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길을 달리며 느끼던 그 감각.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걷고 마주하는 내 집 앞의 작은 숲, 그 길이 도시의 새로운 경관이 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젠 내가 중심이고, 우리가 중심이 되는 도시. 이 변화 속에서 나는 디자이너로서도, 이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경험으로 배우고 있다.
사람중심 도시라는 말이 익숙한 만큼,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당연함이 실행가능한 계획에 의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양한 차원의 이해와 디자인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감히 생각컨데, 차를 타고 지나며 느끼는 가로경관은 이제 과거의 것. 지금의 도시는 ‘차로 이동가능한 거리’가 아닌 ‘내 일상과의 거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집 앞, 단 몇 걸음 만에 "작은 숲"을 마주하는 기분은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상의 기쁨이다. 도시는 단순히 이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걷는 동안 사람과 자연, 공간과 활동이 얽히는 복합적 시스템이다. 이런 변화는 속도와 효율 중심의 도시계획에서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우선하는 패러다임 전환은 필수적이다.
계절마다 다른 꽃과 나무가 도시 속에서, 특히 집 앞 가까운 곳에서 주는 변화의 감각은 단순한 ‘녹지율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작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건,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일상의 장소성과 기억의 공간이 된다. '학교가는 길(Rue aux écoles)' 프로젝트처럼 아이들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생물 다양성을 느끼며,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삶의 질 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환경 개선까지 이어지는 전체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사람 중심의 도시 디자인은 근접성을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3️⃣ 디자인의 목표는 건물이 아니라 삶이다
도시는 단순히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의 집합체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 내가 걷는 길, 그곳에서의 감각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도시가 된다. 도시 설계는 ‘무엇을 더 지을까’가 아니라, 이미 지어진 것들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파리가 보여주는 사례처럼, 도시의 변화를 단순히 인프라 개선이나 수치적 효율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삶의 리듬을 중심에 두는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이런 변화들은 내 일상에 작은 기쁨을 만들어주고, 내가 이 도시를, 이 장소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그게 도시 디자인의 진짜 힘이고, 내가 매일 배우고 고민하는 이유다.
내가 매일 걷는 길, 내가 사랑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 내가 배우는 도시의 변화.
디자이너로서의 시선과 사람으로서의 감각이 만나, 나는 오늘도 도시의 진화 속 작은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이야말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진짜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파리 도시 큐레이팅
근접성, 15분도시에 촛점을 둔 프랑스 파리의 도시변화에 대한 도시 큐레이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서울시 성동구, 동작구, 제주도청, 고양시, 대전시, 전주시, 국토연구원, 건축공간연구원, 서울연구원, 국토부 등 도시계획과 관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파리를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시거나 기획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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