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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by 해진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고된 인생의 여정을 참고 견디며 꽃피는 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찾아온

그곳에 슬픔과 고통 만이 남아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슬픔과 고통은 삶의 쓰라린 잔이지만 마셔 두어야 할 때가 있다면

나는 그 잔을 망설임 없이 비우려 한다



나의 사랑과 기쁨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내 삶의 슬픔과 고통도 사실은 나의 몫인 것만은 아니다는 믿음만 있다면 나에게는 그것들을 과감하게 신의 손에 맡겨버릴 용기 또한 있을 것이다



나의 앞에 있는 슬픔과 고통의 잔을 비우고 나서 또 다른 슬픔과 고통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불평 하지 않고 다시 묵묵히 그 잔을 비울 것이다

불평을 하든, 않든 그것도 나의 몫이지만

불평하는 자는 신의 자비를 의심하는 자라고 했으니 나는 의심하는 자는 되지 않으려 한다



슬픔과 고통의 잔을 수없이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 해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이미 나의 슬픔과 고통은 신의 손에 맡겨졌으나 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신께서 판단을 내릴 시간 까지는 참아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슬픔이고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므로,

나의 고통스러운 삶에도 그 고통을 잊을 수 있는 틈이 있고, 나의 심장을 부수는 슬픔에도 기쁨의 씨앗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으며, 나의 영혼을 짓누르는 모든 슬픔과 고통의 끝에서 신의 자비의 손길이 나를 감싸 줄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잠시 행복할 수 있지만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늘 권태라는 괴물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권태라는 것은 내가 불행해져서 그 불행의 고통에 몰입하여 허우적 댈 때까지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차라리 고통받는 인간의 아픔만이 영혼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인내하면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은 어느새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연의 본성은 인내하는 것이기에, 나 또한 저 산비탈에 외로이 서있는 겨울 나목들이 눈 덮인 가지를 애써 털지 않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찾아와 녹여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저들처럼 기다리는 것도 기쁨인양 살아가다 보면 신의 자비를 온몸으로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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