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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

by 해진

푸른 물 머금은

소나무들이 나를 반기는

이 길을 사랑합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나의 시선이

알알이 박혀 있어서


정이 갑니다


활짝 핀 진달래꽃들도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럽게 하니

참지 못하고 웃습니다


그들의 웃음이

나를 향한 웃음인 듯합니다.


이제 이 길에도

완연한 봄이 스며들어


노래를 좋아하는 내 입에서

봄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그 많던 꿩들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다람쥐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람쥐들이

놀던 그 자리에는


청설모들이

나무 위에서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놀고 있지만


그들도 자세히 보면 귀엽습니다


나를 보면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져서

달아나던 산토끼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만


아직도

황갈색의 예쁜 고라니들은

겁 없이 내 앞에서 노닐며 다닙니다


꿩들도

다람쥐들도

눈이 동그란 산토끼들도

모두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산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합니다


산의 모습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아스라한

산안개에 둘러싸인

새벽의 산은


내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묘하고도 신비한

영감을 선사합니다


그 시간의 산은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느낌을

내게 아낌없이 전해 줍니다


정오 경에 산을 오르면

산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태양이 중천에 떠서

작열하는 빛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있는

나무들로 인하여


산은 푸르름의

충만 그 자체를

내게 안겨 줍니다


이 푸르름을 받고 사는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의 산은

약간 희끗한 어둑해짐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안도감을 내게 줍니다


서산으로 기울어 가며

산 넘어 제집으로 들어가는 햇님은

잊지 않고 내게 마지막 빛을

가슴에 가득 던져주고

내 앞에서 사라집니다


나는 그 빛을

내 안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

내일을 살 수 있는 희망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님의 노을빛 사랑은

나의 적막한 가슴을

조용히 채워줍니다


이렇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산길을 걷습니다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생각들이

심오한 철학으로

이어지지 않고


내 머리 안에서

산산이 다 부서져도

괜찮습니다


나른한 오후의

백일몽 같은 생각이면

어떻습니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잠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런 류의 모든 상상들은

생각으로 굳어지기 전에


모두 나래를 펴고

날아가 버리므로

무해하고 죄가 없습니다


나는 이 길에게

무한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오늘도 이길 위를 걷고 있습니다


내게 이 길이 없었다면

오늘 이 시간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겠지만


이 길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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