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에어컨 비사용자

by 해진

오늘은 온도가 요즈음의 다른 날 보다 2도 C 정도 낮은 것 같습니다. 살만합니다. 살만한 날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는 않죠. 이 비 그치면 무시무시한 폭염이 밀어 밀어닥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여름이 너무나 더웠고 올해도 그러리라고 예측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그리 덥지는 않습니다.


더위를 잘 견디는 것도 면역력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어컨도 없이 지난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더위를 견디는 힘이 좀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올해 초부터 얼마 전까지 에어컨을 설치하라고 딸이 저를 몇 번이나 다그쳤지만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다른 사람들 보다 더위를 덜 타는 체질이기도 하지만 올해의 더위를 견딜 수 있는 체감온도가 작년 보다 약 2도 정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약간의 오기가 발동하여 이번 여름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또 그냥 스리슬쩍 넘어가기로 스스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저는 원래도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면서도 연한도 다 되지 않은 에어컨을 다른 사람에게 그냥 물려주고 온 적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숲세권은 다른 곳 보다 실제로 체감기온이 좀 낮습니다. 그래도 작년 여름의 기습적인 폭염에 최후까지 버티던 몇 가구가 에어컨 설치를 서둘러서 이 숲세권에 위치한 우리 동에서도 에어컨이 없는 집은 드물게 되었습니다. 시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우리 윗집 선생님 댁과 우리 동 끝 7층에 사는 약사님의 댁, 그리고 우리 집 만이 에어컨 비설치 가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니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남들에게 등 떠밀려서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 일은 피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들어 저는 드디어 "자발적 에어컨 비사용자"라는 말을 어디에서 인가 듣고 저도 그중의 한 사람이라는 선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용어를 빌어 저의 주의에 대한 선언을 하자 단박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 까지는 아니지만 저 고집을 누가 말리랴 하고 모두 포기한 겁니다. 딸이 고육지책으로 부모님을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누가 에어컨을 설치할 돈을 주면 공돈이라고 생각하고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줄 알았나 봅니다. 하지만 저는 최신식 에어컨을 들여놓을 수 있는 수백만 원의 돈을 용감하게 딸에게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한국의 불볕더위에 대한 정보를 먼저 입수한 딸이 런던에서 여기까지 쫓아와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지라 속이 많이 상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하고 밀았습니다.


사실 제가 에어컨을 구입하지 못할 만큼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닌데 왜 고집을 부리면서 굳이 더위를 참아가면서 사느냐고 주위에서 더 안달복달을 하고 딸까지 가세를 하니 견디기가 어려워 에어컨을 들여놓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름 은근한 오기 같은 것이 발동한 겁니다.


이왕 자발적 에어컨 비사용자가 될 바에야 좀 철저하게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환경주의자들의 의견들을 인터넷상에서 수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기발한 의견들이 많았지만 제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서너 가지 정도였습니다. 이럴 때 집이 넓은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엌용 전열기구를 다용도실용 베란다 쪽으로 옮겨 놓고 고온으로 조리해야 할 음식들은 될 수 있으면 당분간 조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풍기 외의 다른 전열기구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몇 대의 선풍기를 열이 나기 전에 교차해 가면서 돌리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더운 바람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막아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쓰지 않는 전열기의 플러그들은 모두 빼놓았습니다. 참, 다이소에 가면 선풍기용 아이스팩이 있다고 하니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될 것 같기는 한데 제가 사용해 보지 않아서 입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제가 이런 방법들을 사용해서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집 주위에 자리한 무성한 숲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도 전에 살았던 대도시의 번화가에 살고 있다면 이런 비문명적인 더위 퇴치법이 먹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든 부분에서 소비를 줄여나가고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여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일을 이제는 정말 모두 생활화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하여 도시 주변에 숲을 확장해 나간다면 해가 더할수록 점점 기승을 부리는 더위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조금이라는 것이 있어야 큰 환경적인 변화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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