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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May 01. 2023

세이렌의 유혹 <2021.10>












세이렌.

지중해를 지나가는 선원들을 노래로 유혹하여 죽였다던 신화 속 괴물. 얼마나 노래를 달콤하게 불렀길래 뱃사람들을 홀려서 죽일 수 있었을까.           




모두 우리의 노래를 듣고 더 행복해져서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우리는 그대의 모든 것을, 저 넓은 트로이에서 트로이인들과 아르고스인들이 신의 뜻에 따라 겪어야만 했던 모든 일을 알고 있답니다.         




세이렌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

아, 누구라도 홀릴만한 가사였다. 하지만 딱 한 명은 살아남는다. 오디세우스. 그는 귀를 막지 않고도 세이렌의 유혹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전에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을 기둥에 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패배감을 느낀 세이렌은 바다에서 자살하고 만다.     



      

400%.

가장 많이 산 디센트럴랜드는 삼 일 동안 400% 넘게 올랐다. 그다음으로 많이 샀던 샌드박스는 170%. 뉴스가 ‘메타’ 소식과 함께 메타버스 코인의 상승을 보도했다. 소파에 누워 그 뉴스를 보던 나는 이렇게 되뇌었다. “머리를 차갑게 해야 해. 뉴스까지 나왔으니 이제 곧 50%를 매도해야 돼.” 하지만 앞자리 숫자가 늘고, 뒤자리 숫자에 0이 하나 더 붙고, 빠르게 꿈틀거리는 빨간 숫자를 보고 있으면 피가 끓어올랐다. 그리고 피가 끓기 시작하면 바보가 됐다.          




사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무서운 상승 뒤에 무서운 하락이 따라온다는걸. 큰돈을 벌면 욕심을 덜고 차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변덕이 도졌다. 긍정적인 생각이 달걀 속 병아리처럼 머릿속을 계속 쪼아댔다. 이렇게 큰 호재엔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오를 거라는 망상, 나의 계급 사다리는 크고 튼튼하다는 자신감, 여기서 조금만 더 올랐으면 좋겠다는 욕심, 버티면 조금 더 행복해질 거란 희망이었다.        



   

1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갑자기 떨어질까 봐, 혹은 갑자기 더 오를까 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마음을 다 잡고 전량 매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매도 버튼을 누르려고 하면 숫자가 속삭였다.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여기서 모두 보상하겠다고.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행복해져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마치 세이렌이 속삭이는 가사처럼.           




결국 나는 팔지 못했다.

아, 젠장. 욕심이 배 밖으로 나왔지. 나는 행운과 사랑에 빠졌고 애미애비도 못 알아볼 만큼 취했다. 가슴이 뜨거웠는데 냉각수는 없었다. 있을 리가. 허구한 날 알바만 하던 사람이 이틀 만에 대기업 연봉만큼을 손에 쥐었다. 쉽게 뜨거워진 마음을 식힐 재능은 나에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디세우스와 다르게 나에겐 나를 뜯어말리는 동료가 없었다. 



      

결국 고점에서 39%~47%가 떨어졌다.

이틀 동안 쉽게 벌고 이틀 동안 쉽게 잃었다. 인간적인 실수였지만 용서할 수 없는 실수였다. 지금도 그 실수는 나에게 가장 아픈 실수로 남아있다. 하지만 뭘 어쩔 수 있었겠나. 투자 경험 두 달밖에 안 된 얼치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망상에 빠지는 일 빼고. 그땐 그게 나의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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