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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May 04. 2023

발버둥 <2021.11>

옛 영광












노인은 어부다. 

그는 젊었을 적 훌륭한 어부였다. 존경을 받았고, 감탄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늙었고, 낮잠을 자고, 사자 꿈을 꿀 뿐이다.          



      

노인이 바다에 나간 어느 날, 

드디어 청새치가 낚싯줄에 걸려든다. 거대했다. 무려 5.5 미터.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청새치는 모든 힘을 쥐어짠다. 살아야 하기에. 노인도 모든 힘을 쥐어짠다. 영광을 되찾아야 하기에.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

나는 노인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누렸던 젊음과 영광처럼 세상 모든 것은 있다가 없어지니까. 있다가 사라지는 그 헛헛함에 사람들은 영광을 되찾으려 발버둥 친다. 소설 속 노인처럼. 그리고 영광스러웠던 옛날이야기를 해댄다. 그게 마치 어제 일인 것 마냥. 나는 그 꼴을 수없이 봐왔다. 왕년에 뭐 아니었던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지나간 추억을 듣고 있으면 더욱 울적해지고 더욱 헛헛해진다.          




사실 내가 그렇다. 

추억을 곱씹고 추억을 떠들고 영광을 되찾으려 발버둥 친다. 투자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런다. 있다가 없어지는 돈에 헛헛함을 느끼고, 옆에 사람에게 내가 얼마까지 벌어봤는지 떠들어댄다. 어쩔 수 없다. 거래소나 증권사에 있는 잔고는 좀 특이하다. 있다가 쉽게 없어진다. 정말이다. 은행에 있었던 돈은 인간이 그린 그림처럼 지저분하게 흔적이 남지만, 거래소나 증권사에 있는 돈은 달빛이 연못에 그린 그림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홀연히.           




그래서 나는 핸드폰 화면을 캡처한다.

왜? 스쳐 지나가는 숫자를 잡아 못을 박고 싶어서. 그래서 그 숫자를 훈장처럼 간직하고 싶어서. 



          

하지만 훈장이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는 그걸 경험했다. 2021년 말, 나는 숫자가 변할 때마다 스크린샷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최고의 숫자를 내가 ‘진짜로’ 가진 돈이라고 생각했고, 변하지 않을 숫자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돈은 쉽게 팽창했다가 쉽게 쪼그라들었다. 나는 상실에 빠졌다. 묘한 상실감이었다. 내가 실제로 가지지 않았던 돈에 대해서 느끼는 상실감이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그 헛헛함을 견디기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홀연히 사라진 숫자 아니, ‘영광’을 되찾으려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단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는 걸 찾는데 모든 힘을 쥐어짜며 발버둥 쳤다. 벌 때도 있었다. 드물게. 하지만 자주 잃었다.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복구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포기하기 힘들었다. 장기투자자들이 혐오하는 짓은 다했다. 섹스처럼 넣다 빼면서 온갖 수수료를 거래소에 갖다 바쳤다. 다음날 찾아오는 지독한 숙취처럼 실수와 후회가 반복됐다. 나는 능숙한 단타쟁이를 흉내 내려고 했지만 실패한 도박꾼일 뿐이었다. 내 잔고는 노인이 잡은 청새치처럼 살코기가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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