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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May 04. 2023

집중할 수 없다 <2021.11>








중독은 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알코올 환자 앞에서 ‘치어스 Cheers’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깊게 남은 중독의 흔적은 작은 단서에도 꿈틀거리니까.           




난 작은 단서에도 꿈틀거렸다.

스치는 이미지 하나가 위험했다. 캔들(막대) 그래프, 동전 모양, 빨간색 숫자, 파란색 숫자, 기사 제목들, 제롬 파월의 발언, 인플레이션 지표들. 나는 정신을 놓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거래소 앱을 켰다.     






1960년대에도 중독될 만한 대상은 있었다.

담배, 알코올, 마약. 구하기 어려웠고 돈을 내야 했던 물건들. 하지만 2020년대에 중독될 만한 것들은 예전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접하기 쉽고 빠르고 편리하고 공짜이며 끝도 없는 세계다. 젠장, 장소 제한도 없다.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서 깨면 핸드폰을 확인하고 다시 잤다. 샤워할 땐 방수팩에 핸드폰을 넣어놓고 머리를 감으면서 숫자들을 봤다. 줌 수업으로 교수와 이야기하면서도 핸드폰을 키보드 옆에 두고 확인했다. 보고 있으면 오르나?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짓은 내게 참을 수 없는 틱이 됐다.           




경제뉴스도 중독적이었다.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영상을 꼬박꼬박 챙겨 봤다. 밥을 먹으면서, 걸어 다니면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방송을 봤다. 나를 침 흘리게 만드는 썸네일과 비열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들이 넘쳐났다. 밑도 끝도 없었다. 내년까지 상승한다는 낙관론자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면 내년 시장은 폭락한다는 비관론자들의 영상이 나타났다. 항상 그랬다. 앞의 영상은 뒤에 있는 영상의 앞잡이였고 나는 핸드폰을 끄지 못했다. 앗 하는 순간 10분. 앗 하는 순간 1시간이 흘렀다. 미쳤다. 인터넷 서핑? 노, 인터넷 딥 다이브(Internet deep dive)였다.           




단기 투자의 폐해였다.

어떤 것에 집중 못 하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집중을 하는 순간이 특별했다. 할 일은 쌓여있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몸과 내 의지의 주인이 나라는 긍지를 잃은지 오래였고, 이상한 잔뇨감이 느껴져서 ‘나가기’라는 그 빌어먹을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멱살 잡힌 바보처럼 끊임없이 확인하고 끊임없이 혹했다. 깨끗한 머리로 고요하게 지냈던 적이 없었다. 그쯤 되자 차라리 모든 걸 정리하고 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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