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주인공은 다시 바이러스였다.
이름은 ‘누Nu (오미크론)’. 아프리카에서 탄생했다는 변이 바이러스. 변이야 매번 등장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WHO가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이미 몇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파이크 단백질 돌연변이가 32개이고, 기존 백신은 이 바이러스를 막기 힘들며, 이 바이러스가 델타 변이보다 감염률이 월등히 높다는 것. 분위기는 심각했다. “최악의 변이(Worst variant)” 방역 전문가들이 내뱉은 말이었다.
2021년 11월 26일,
WHO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 바이러스를 ‘오미크론’이라 명명하면서 ‘우려종’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그 위험도를 ‘매우 높음’으로 평가했다. 이 소식에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서는 방역당국의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쓰고, 붐비는 장소를 ‘피하라’. 뻔하지만 유일한 무기였다.
허탈했다.
이제 겨우 델타가 누그러지고 봉쇄의 끈이 느슨해졌는데, 이제 겨우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를 옛날처럼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데, 이제 겨우 사람들이 지갑을 벌리기 시작했는데, 다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국경 봉쇄와 방역이 강화됐고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냉소가 나왔다.
2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으니. 바이러스는 이어달리기를 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오미크론. 하나의 끝이 하나의 시작이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파우치 소장은 오미크론에 대해 묻는 뉴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거의 2년 동안 경험에서 우리가 파악한 한 가지는 이 바이러스는 정말로 예측 불가하다는 겁니다.” 그는 한 달 전 10월 13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압도적인 백신 접종률을 통해 델타 변이를 능가할 변이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오미크론은 정말 빨랐다.
‘우려’대로 오미크론은 전 세계 확진자 기록을 빠르게 갈아 치웠다. 전염 속도에서 델타가 알파보다 1.6배 빨랐고, 오미크론이 델타보다 2~3배 빨랐다. 절정일 때 전 세계에서 하루 400만 명이 확진됐다. 백신을 맞은 사람이든 안 맞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확진됐다. 그동안 쌓아 올린 백신이라는 성과이자 성벽이 무의미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결국 오미크론은 우세종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 일은 오묘한 법.
절망 속에 희망도 있었다. 바로 ‘전염률의 역설’이었다. 바이러스 특성상 전염률이 높을수록 치명률이 낮았다. 오미크론은 델타와 다르게 폐 깊숙한 곳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했다. 보고된 증상에 따르면 가벼운 감기 증상을 겪은 환자들이 많았다. 물론 오미크론은 확진자와 중환자의 수를 끌어올렸고 중환자실과 약을 부족하게 만들어 의료시스템에 균열을 냈다. 그런 의미에서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델타 변이보다 좀 더 만만한 놈인 건 확실했다. 마치 감기와 독감처럼.
어쩌면 오미크론은 기회였다.
일상을 되찾을 기회. 델타는 우리가 같이 살기에 너무 거칠었다. 하지만 오미크론은 달랐다. 불편한 동거가 되겠지만 오미크론은 그나마 감내할만했고, 어차피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고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실용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2022년 2월, 오미크론 유행이 한 풀 꺾이자 미국, 프랑스, 영국이 먼저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했다. 바이러스에게 발목이 붙잡혀도 일상으로 가는 발자국을 내디딘 것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그리고 1년이 지났다.
2023년 5월, 마침내 WHO가 ‘코로나-19 PHEIC(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 해제를 발표했다. 2020년 1월 30일 WHO가 PHEIC(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선포한지 약 3년 3개월. 1192일 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미크론’이라는 조상을 두고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BA. 1, BA. 2, BA. 4 및 BA. 5, XBB. 1.16, XBB 1.5 등등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만 해도 100가지 이상이 태어났다. 결국 타협한 것이다. 인류가 오미크론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로. 해제 발표날 WHO는 이렇게 말했다. “COVID-19는 더 이상 국제 공중 보건 위기 상황(PHEIC)이 아니다. 장기간 인류가 함께할 보건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