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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May 29. 2023

오미크론이냐 인플레이션이냐 <2021.11>








11월 26일 금요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미국 시장이 쉬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 전쟁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갑자기 공포지수(VIX)가 크게 올라갔고 유럽증시가 크게 떨어졌다. 유가는 빠지고 금값은 뛰었다. 그리고 같이 떨어질 수 없는 달러와 비트코인은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바이러스였다. 

‘누(Nu)’인지 ‘오미크론(Omicron)’인지 뭔지가 나타난 바람에 끔찍한 공포가 번졌다. 당시 나는 백화점에서 선물할 패딩을 고르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가격의 급락을 알리는 진동이 한꺼번에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모든 차트가 핏기를 잃고 아래로 쭉 뻗고 있었다. 그 기울기에 소름이 돋았다.       



   

당시 세계 경제 관료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새로운 코로나가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인플레이션 대응 전략을 짜고 있었다. 서서히 풀고 있는 돈의 양을 줄이고, 서서히 돈을 거둬들이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던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계획이 어긋났고, 골치가 아파졌다. FED(연방준비제도)의 의장 제롬 파월은 이렇게 반응했다. “오미크론의 출현은 고용과 경제 활동에 하방 위험을 불러오고 있다.” 그래, ‘위험’이라고 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공장이 물건을 만들지 못하는 걸 우려한다는 뜻이었다.        



 

코앞에 안개가 들이닥친 것 같았다. 

FED는 물론이고 수많은 연구기관과 제약회사도 오미크론이 얼마큼 위험한 바이러스인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FED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당장 하나의 선택을 해야 했다. 돈을 ‘더’ 줄 것이냐 아니면 앞으로 시장에 돈을 ‘덜’ 줄 것이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부담이 됐다.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기 전에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덜’ 주고, 더 나아가 이미 준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 건 당연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 그것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으니까. 하지만 거기엔 하나의 조건이 따랐다. 바로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야 한다는 것. 만약 돈을 덜 주기로 결정했다가 오미크론이 예상보다 더 경제를 더 나쁘게 만든다면? 이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다가 자해하는 꼴이다. 그럼 반대로 시장에 돈을 적극적으로 주기로 결정한다면?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경제와 자산 시장에 당장 보탬이 된다. 2020년에 세계 경제가 중앙은행이 뿌리 돈으로 버텼던 것처럼. 하지만 이 돈은 인플레이션을 더 크게 키울 것이다. 이건 호랑이 피하려다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꼴이다. 오미크론이 중요하냐 아니면 인플레이션이 중요하냐. 중요한 기로였다.           




언론과 투자자들이 FED의 대응을 지켜봤다. 

며칠 동안 다들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 30일. 파월 의장이 입을 열었다. “자산매입 축소를 몇 달 일찍 끝내는 것을 논의해야 할 것 같다”. 돈을 덜 주고 돈을 거둬들이는 정책을 더 빨리하겠다는 말이었다. 즉, 오미크론이라는 변수가 등장했지만 연준에게 인플레이션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파월 의장은 3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오른 물가가 위험하다는 걸 인정했다. 이날 발언에 다우 존스 30산업 평균 지수는 1.86% 떨어졌고 스탠더드 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1.9%, 1.6% 떨어졌으며, 미 10년 물 국채 수익률은 1.45%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실망감에 찌들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때지?” 연말로 갈수록 인플레이션 지표가 상승하고 비트코인이 주목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미국에 블랙프라이데이(미국의 1년 중 가장 큰 폭의 세일 시즌이 시작되는 날)가 있었고,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전 세계가 연말을 맞아서 쇼핑을 할 시기였으니까. 소비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헤지 수단인 비트코인을 자극한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썅, 물건 세일이 아니라 코인 세일을 할 줄은 몰랐다.     



      

현실이 가진 복잡함에 아득함을 느꼈다. 

“현실은 멀미 날 정도로 복잡해서 아무도 모르는구나. 아무것도 알 수 없구나.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무도 앞날을 모른다는 사실뿐이구나.”           





2021년 비트코인 차트 (출처: 업비트)

 

나는 그쯤 되자 감이 잡혔다. 

이제 끝이구나. 바이러스고 뭐고 간에 중앙은행들이 자신들이 뿌렸던 인플레이션의 씨앗을 거둬들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유동성의 끝. 그래서 유동성을 믿고 투자를 시작했던 코인에 손을 떼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더 이상 잔고가 갉아먹히는 걸 보면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나서 헐떡이고 있었다. 쉬고 싶었다. 초조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아있던 코인을 깔끔하게 처분했다. 모든 것이 깔끔해지자 마음이 개운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귀중한 꿈이 분해되면서 내 손가락들 사이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오미크론이 돈과 기회를 훔쳐 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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