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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Jun 07. 2023

예정됐던 재앙, 오미크론<2021>







유엔(UN)




사실 일어날 일이었다.

오미크론의 등장 말이다. 그전부터 유엔(UN)과 과학계는 계속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라.” 착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던 게 아니었다. 백신을 골고루 뿌려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못할 거란 이유였다. 명확한 사실이었다. 바이러스는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고, 그곳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탄생하게 될 거라는 건 과학 상식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방법은 있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이익이 아니라 인류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위해 다른 국가와 다른 기업에게 기술 이전을 하는 것. 하지만 선진국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과 외교적 지렛대를 양보할 수 없었고, 회사는 주주와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백신 불평등은 그렇게 계속됐다. 물론 몇몇 선진국들은 백신을 기증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기꺼이 가난한 나라에 해방자요 메시아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2021년 당시 미국은 약속한 백신의 25%, 유럽연합(EU)은 19%, 영국은 11%를 기증하는데 그쳤다. 한편, 주요 20개국의 백신 독점률은 89%였다.           




그리고 2021년 11월,

터질게 터진다. 또 새로운 변이였다. 이번 주인공은 아프리카. 역시 백신이 부족했던 곳. 당시 아프리카 대륙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고작 7%였다. 그 염병할 바이러스가 나오자 ‘종식’이라는 순진한 희망은 꺾였고 세상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그러자 화이자(Pfizer)와 모더나(Moderna)와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주가가 치솟았고,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그들에게 몰려들었으며, 그들의 CEO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서 새 백신(상품) 출시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줬다. 글로벌 제약 회사의 존재감이 다시 커져갔다.    


 


하지만 그들을 꾸짖는 목소리도 커져갔다.

이번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은 그들이 자초한 거라는 비난이었다. 그동안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백신 생산과 보급이 느리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고, 기술을 이전하면 백신 원료가 부족해져 질 좋은 백신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고, 기업들의 의욕이 꺾일 거라고, 투자금이 끊길 거라고 항변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백신 불균형이 계속되는 동안 바이러스는 계속 감염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리지널 다음 알파, 알파 다음 델타, 델타 다음 오미크론(누).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오미크론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왜 평등한 백신 공급이 중요한지, 왜 저들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인 건지, 백신 불평등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상기시킨 사건이었다.



화이자




글로벌 제약회사.

그들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주인공이었고, 인류의 영웅이자 은인이었다. 그들은 이익을 좇았고, 그들의 능력으로 백신을 개발했고, 돈을 벌었고, 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인류는 그들 덕분에 일상을 지탱할 수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라고 말했듯이. 하지만 그들의 욕구 안에는 역설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욕심 덕분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진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있다는 역설. 그들은 전염을 막았지만 동시에 바이러스가 그림자처럼 따라오게 만들었다는 역설. 생명을 위해 일했지만 생명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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