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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Jun 09. 2023

벌긴 벌었는데 <2021.11~12>










모든 걸 정리한 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곤 했다. 하늘에 열기가 빠져나갔을 때 숲길을 산책했다. 우산을 들고 밤공기에 스며든 비 냄새를 맡으며 내가 놓친 기회들을 차분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제때 매도를 하지 않은 게 패착이었으나 분명 오미크론이 파티의 흥을 깬 것도 컸다. 좋은 일이 생길 땐 “왜 하필 나지?”라고 궁금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생기자 나는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성였다. “왜 하필 나지?” 뭐, 어차피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어차피 끝난 게임. 기회는 떠나버렸고 모험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분명 벌었다.

돈이 돈을 낳았다. 돈이 가축처럼 새끼를 친다는 걸 직접 느낀 첫 경험이었다. 물론 자기 살을 깎아 먹은 돈도 있었지만. 뭐, 결국 벌긴 벌었다. 주식쟁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는 동안에도 돈을 벌었다. 물론 자는 동안 돈을 번 게 아니라 버린 적도 있었지만 벌긴 벌었다. 돈을 세다 잠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벌긴 벌었다. 누구에게는 별거 아닌 돈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별거였다. 분명 벌었다. 2년 동안 적당히 먹고 놀아도 될 만큼의 돈이어서 시간을 번 것과 마찬가지였다.          




온전히 행운이었다.

실력이 아니었다. 나는 감각있는 투자자들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뿌려놓은 정보를 주워 담았고, 우연히 좋은 타이밍에 베팅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행운을 곱씹을 때마다 레이 달리오(Raymond Dalio, 브리지워터 설립자)를 떠올린다.      





Raymond Dalio, 브리지워터 설립자

          

레이 달리오가 12살 때, 

그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했다. 골프장엔 주식을 이야기하는 손님들이 있었고 그 영향을 받은 어린 달리오는 캐디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주식시장에 투자를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투자는 ‘노스이스트항공 Northeast Airlines’이었다. 그는 투자한 돈의 3배를 벌었다. 그는 주식투자가 쉽다고 생각했고, 주식 투자에 빠져들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고백한다. 그땐 어리석은 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나도 첫 투자에서 실패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실패한다. 이 바닥에서 끔찍하게 실패한다. 그래서 노련한 투자자들은 버는 것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는? 나는 생존했다. 살아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거시기도, 가정도 멀쩡하게. 안 그런가? 뿐만 아니라 놀랄만한 일이 벌어진 덕에 빚까지 투자한 돈의 4 배를 벌었다. 멍청했지만 운이 좋았다.           




하지만 마음은 어지러웠다.

의식적으로 계속 내가 운이 좋았고, 성공한 도박꾼이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후회가 따라왔다. 그 후회가 나 자신을 불행한 놈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나를 징징거리게 했다. 그리고 헛헛함도 찾아왔다. 좋은 여행이 끝났을 때 밀려오는 그런 헛헛함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는 영원히 떠나버렸고 모험의 끝이 보였다. 지난날의 기쁨과 영광은 과거로 돌아섰다. 산책을 할 때마다 후회와 헛헛함이 가슴을 후벼팠다. 취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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