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노타우루스 미궁.
그곳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부자는 살아남고자 주변에 떨어진 깃털과 미궁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큰 날개를 만든다. 그 둘은 날개를 자신들의 몸에 붙여 새처럼 날아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날개가 녹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카로스는 너무 신난 나머지 높게 날았다. 결국 날개가 녹아 그는 추락한다.
2.
투자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재미를 보자 나는 내가 투자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년에 그리고 내후년에 더 벌 거라고 확신했다. 그땐 아는 척하며 헛소리도 참 많이 했다. 코인으로 번 돈을 하락장이 오기 전에 현금과 달러로 바꿨겠다, 이걸로 당장 2배, 3배 더 불리고 싶었고, 그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부모처럼 과로에 시달리지 않을 거란 달콤한 꿈을, 그리고 몇 년 안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괜찮은 투자자가 될 거란 꿈도 꿨다. 그래서 당분간 노동이란 걸 하지 않고 제대로 농땡이를 피울거란 다짐도 했었다. 한동안, 정말로, 진지하게. 돈도 벌었겠다, 뭣하러 표정 구기며 남의 말에 굽신거리며 일을 하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쉽지 않았다.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이 시작되고 러시아 전쟁이 터졌다. 부동산과 주식과 코인은 박살 났다. 이자는 올라갔고 정부가 주는 따뜻한 지원도 끊겼으며 남의 돈으로 하는 사업은 돈줄이 막혔다. 난다 긴다하는 놈들도 투자시장에서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했고, 상승장에서 자신이 은총을 받고 있다고 착각한 초보자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비극이었다.
여기저기서 죽는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점에 있던 사람들의 날개가 꺾였다. 믿음도 꺾였다. 부동산, 주식, 코인을 숭배했던 사람들은 실망감에 찌들기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투자를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내치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을 투자시장에 내 몬 것은 버블이었고, 그들은 노동시장으로 내 몬 것은 버블의 터짐이었다.
나는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나는 내가 어처구니없고 불가능한 소망에 헐떡였다는 걸 깨달았다. 부동산과 주식과 코인의 날개가 꺾일 거란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시장이 무섭게 떨어지는 모습에서 나는 겁을 먹었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란 걸 직감했다. 하락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더 잃을 게 뻔했다. 투자가 노력과 항상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특히 나같이 투자 경력이 짧은 사람은 더더욱.
그래서 당장 일자리를 알아봤다.
투자의 절정기는 끝났지만 삶은 계속됐으니까. 밥을 먹고, 이자와 할부금을 내야 했으니까. 미칠 일이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양천도서관에서 알바를 했고, 졸업 후에 도서관의 문을 두드리며 면접을 봤다. 면접장에서 어벙한 말을 했지만 면접관의 아량으로 운 좋게 직장을 구했다. 지금은 영어특성화도서관에 일을 한다. 마치 노동시장으로 떨어진 이카로스 같았다. 한 방에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과 전혀 다른 삶이지만, 그리고 일이 고되고 매일 피곤하지만, 책과 가까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이용자들이 빌려 가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가끔 있다. 저축도 한다. 도시락을 만들고, 교통비를 아끼고, 사고 싶은 물건을 안 사며 돈을 아낀다. 그걸로 애플과 구글, 뱅크 오브 아메리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분할 매수하는데 보탠다.
물론 이런 생각도 불쑥 든다.
과거에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수익 실현을 했더라면 지금 이 고생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 하지만 월급이 얼마든 또박또박 정기적으로 들어온다는 안정감은 투자 결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나를 안다. 월급이 없었다면 조급한 결정과 실수를 했을 것이다.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