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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Jan 24. 2023

차이 (1): 만남 <2021.7.1~7.15>








L은 훈련소 동기였다.

그리고 우연히 경찰학교에서 같은 방을 배정받고 친해진 동갑 친구였다. 그리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 똑같은 중대로 배치된 동기였다. 가장 친한 동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그에게 호감과 우정을 느꼈다.    



       

우리는 비슷했다. 

아프리카 사람의 팔을 이식한 것 같은 팔뚝,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은 머리가 비슷했다. 같이 대걸레질을 했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같이 훈련을 받으며 같이 얼차려를 받은 것도 비슷했다. 같이 물을 나르고 같은 도시락을 먹은 것도. 가끔 경찰 모자를 바꿔쓰고, 같이 샤워한 것도. 여름, 겨울, 음식, 소문, 훈련, 우리는 같은 것을 호흡했다.          




L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어서 한국으로 귀국해 군대에 왔다는 말. 소등하고 침상에서 둘이 수다를 떨다가 나온 말이었다. L을 향한 소문도 기억난다. 소문 중에는 L의 친척이 1000억 부자라는 말도 있었다. 그 소문은 믿지 않았다. 소문이란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가? 하지만 그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에게 재력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SNS 사진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외국물먹은 학력, 브라운대에 있는 그의 친척 형, 갤러리에 대한 추억, 골프를 향한 애정.          



 

하지만 내 편견과 다르게

그는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에게 ‘부자’라고 말하면 그는 항상 민망한 표정으로 ‘중산층이지, 부자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한편, 이상하게도 나는 제대할 때까지 그가 유별난 부자라는 걸 신경 쓰지 못했다. 아마 똑같은 빡빡 머리, 똑같은 가방, 똑같은 옷, 똑같은 음식, 똑같은 스포츠 때문에 구별짓지 못했으리라.          




L과 가장 친한 건 K였다.

L과 나는 소대가 달랐지만, 그 둘은 같은 소대였다. 둘은 결이 맞았다. 둘 다 로스쿨에 가길 원했고, 영어를 잘했고, 미국 야구를 좋아했다.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에 대해서, 학업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그들은 나를 선비라고 불렀다

볼 때마다 책만 읽고 있었으니까. L과 K는 종종 내 침상으로 와서 책을 빌려 갔다. 우린 주로 경찰버스 안에서 책을 읽었다. 그게 의경이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책을 반납할 때마다 소감을 말했고, 짧은 토론을 했다. 유발 하라리에 대해, 하루키에 대해, 부르디외에 대해, AI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해, 공산주의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연애와 사랑에 대해. 뭐, 벌써 오랜 전 일이다. 순수한 시절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의 시간, 나의 시간, 모두. 그래서 우연히 그를 만난 날, 그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아니, 원래 나와 달랐다는 걸 느꼈다. 햇빛이 식어가고 하늘이 자줏빛이었던 그날 오후. 나는 이어폰을 끼고 버스에 올라타 교통 카드를 찍고 있었고, 내 머릿속에서는 흰 돌고래 같았던 그 매끈한 차가 이빨에 낀 고깃덩어리처럼 오랫동안 걸리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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