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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Jan 26. 2023

IMF외환위기 (1):축복 <2021.7.15~31>








그림 하나를 상상하곤 한다.

해변에 큰 배가 정박해 있고 중년 둘과 어린 짐승 셋이 있는 그림. 그 그림을 보면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난 그 시절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귀로 들은 이야기가 많다.







형이 있었다고 들었다.

열네 살 위의 형. 나는 열네 걸음 앞선 남자를 보며 내 삶의 리허설을 볼 뻔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죽었다. 세포로 출발해 이 세상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여백이 된 거다. 짧은 파도처럼.      




할머니와 아빠는 산에 올라갔다.

도저히 못 가겠다는 엄마를 밑에 두고. 그곳에서 어린 겨드랑이에 꽂았던 손으로 어린 뼛가루를 뿌렸다고 한다. 나는 그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부당함에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부모, 분필가루처럼 추억을 그리는 모유색의 뼛가루, 슬픈 이야기를 모르는 까치, 뼛가루 묻은 풀과 나무.     




내가 형에게 느끼는 감정은 강렬하지 않다.

마치 내 집의 전 주인처럼 희미하게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에게 형은 뼈에 손금처럼 새겨진, 사라진 동거인이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개 같은’ 의사의 오진으로 형의 불행이 시작된 것 같다고, 확신한다고. 같이 낙엽이 많은 산책로를 걸을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생각나.” 불길한 잠을 자고 있는 작은 몸을 들고 병원으로 뛰었다고 했다. 1m가 100m 같아서, 1초가 100초 같아서 자신의 다리를 원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사실 수 십 년이 지나도 낙엽이 많을 때 쯤이면 매번 가슴이 아리다고. 동거인이 너무 짧게 살고 너무 오래 죽어있어서 남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빠는 형에 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까지도 그 산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고, 하산한 날  이불만 뒤집어쓰고 울기만 했다고.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형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누구는 숨어서 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 집에는 형의 사진도, 옷도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됐다.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내렸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삶은 순조로워졌다. 그동안 딸들도 태어났고 모두 건강했으며 일과 집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다시 태몽이 찾아왔다. 두 중년은 소년과 소녀처럼 웃었고 익숙함을 느꼈다. 아들이었다. 데자뷔처럼.       



    

엄마는 때를 기다렸다.

다시 모래를 핥으러 오는 파도를 기다리는 자세로. 노산을 앞둔 엄마는 부처를 버리고 예수를 선택했다. 기도했다. ‘주여, 재도전을 축복해주시길.’ 시간이 흘렀고 뱃속에서 포돗빛의 아들이 나왔다. 나였다. 첫째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심장을 가진 아들. 뱃속 주인에게 전해 들은 바, 그 아기는 마치 누군가가 부활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유일신의 축복이었을까,

집에 꽃과 술, 그리고 산삼이 가득했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였고 술은 빠르게 사라졌다. 외할아버지는 산삼을 캐서 딸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아직 부족한 살림이지만 집도 있고, 자식 셋도 낳았으니 고생 끝났다고. 나의 부모는 그 말을 듣고 인생에 퇴근만 남은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고 한다. 질병도, 가난도 없고, 상실을 겨우 메꾸고, 부지런하게 일하며 차근차근 올라가던 시절, 때는 199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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