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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Feb 03. 2023

독서했다는 후회 (1) <2021.7.15~31>








이때 처음으로 독서에 빠진 걸 후회했다. 

철이 들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후회할 줄 몰랐다. 책을 읽으면 책을 쓴 사람만큼 똑똑해지고 위대해졌다고 느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읽었다면 어른들이 나를 참 좋아했을 텐데,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고, 책을 읽는 나의 모습에 취해 일부러 카페와 지하철에서 읽기도 했다. 누군가 값싼 관심이라도 던져줄까 봐 고전 명작도 꾸역꾸역 읽었다. 읽은 책이 기둥처럼 올라갈 때마다 나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나?” 전혀. 누구는 독서를 하면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소리. 인간적인 훌륭함은 타고나는 것이다. 소라가 껍데기를 가지고 태어나듯이. 독서로 얻은 교양은 훌륭함이 아니다. 괴테와 칸트를 아는 독일 교수들은 유대인을 제거하는 정책을 받아들였다. 관동대학살을 비난한 건 일본 대학에 있던 교수들이 아니라 일본 생선가게에 있던 한 상인이었다. 이렇듯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재능에 가깝다.    



      

다시 질문했다. 

“그럼 독서를 하며 나는 무엇이 되었나?” 대답은 “지적 허영을 종양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 자기 파괴적인 고독에 빠진 사람. 우월이 아니라 우월감만 가진 사람.”        



   

“그럼 쌀이나 돈이 생겼나?” 

아니. 내가 읽은 책은 삶이 힘들 때 쓰는 방패가 됐지만 돈을 버는데 쓰는 무기는 아니었다.  






         

“문장이 머리에 남았나?” 

아니. 글을 눈의 홍채에 쏟아 넣어도 뇌에 박히는 건 몇 문장, 몇 장면일 뿐, 그것마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고 벗겨지고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꿈처럼 사라졌다. 읽었다는 사실은 있지만 문장을 기억할 수 없었다. 잊힌 얼굴처럼.          




그제야 나는 내가 바보였다는 걸 인정했다. 







2022년 6월 2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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