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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Feb 03. 2023

독서했다는 후회 (3) <2021.7.15~31>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수능이 끝난 날로. 인생을 결정할 시간. 대학은 안 가려고 했다. 가족들이 발끈했다. 불이익과 불편한 시선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나는 일단 다양한 경험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게임중독자의 변명이었다. 끈질긴 설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비된 사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답답했던 누나가 나 대신 원서를 넣었다. 집에서 가깝고 취업률 좋은 학교로.      



     

“1년이라도 다녀보고 생각해라” 

누나는 인생 선배처럼 말했다. 나는 합격 문자를 받은 날에 굴복했다. 1년만 다녀보기로. 1년 동안 그곳에서 건축을 배웠다. 가우디, 김수근, 안도 다다오, 르 코르뷔지에. 오래된 이름이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그곳은 숨 막혔다. 게임이나 더 하고 싶었다.      



     

방학의 어느 날 

벼락을 맞은 것처럼 컴퓨터가 고장 났다. 우울했던 그날, 나는 누워서 멍청한 눈으로 핸드폰만 쳐다보다가 팟캐스트 발견했다. 제목이 뭐라더라? ‘2000년대에 나온 가장 재밌는  장르소설’이라고 했던가? 부제는 천명관의 「고래」, 정유정의 「7년의 밤」이었다. 속는 셈 치고 인생 처음 도서관의 자료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쭈뼛거리며 회원카드를 만들고, 천명관의 「고래」, 정유정의 「7년의 밤」, 내친김에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도 빌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한 장, 한 장 넘겼다.      





 


어땠냐고? 

새벽까지 손톱을 뜯으면서, 다리를 덜덜 떨면서, 감탄을 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읽었다. 뒤로 갈수록 가슴이 너무 뛰어서 손가락으로 넘기는 한 장, 한 장이 무거웠다. 그때부터였다. 책이 재미없는 게 아니라 내가 재밌는 책을 못 읽은 거였구나,라고 느꼈던 게.             



    

신기한 경험을 한 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가족들은 드디어 미친 건가,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재밌는 책은 이틀에 한 권씩 읽었고, 지루한 책은 조금씩, 다른 책과 동시에 읽었다.  



         

집 형광등, 도서관 형광등, 아침 하늘, 밤 하늘.

당시 나에게는 네 종류의 천장뿐 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궁금했다. 저건 어떤 직업일까? 책에 둘러싸여서 산다면 어떨까? 나는 알 수 없는 그 직업을 동경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사서가 되자.           




봄에 다시 대입을 준비했다. 

그리고 수능을 보고 사서가 될 수 있는 학과로 입학했다. 그곳에선 나만 유급생 같은 나이였다. 하지만 인생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을 공부했다. 새로운 길이 서서히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굳어갔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책만 읽고 싶어서 휴학을 하고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PC방에서만 하는 생활을 방에서 했다. 또다시 생산성 없는 중독. 삶은 이것뿐이라고 자신만만해다가 점점 시들어가서 결국에 자신의 운명에 실망하는 길이었다. 내 팔자를 꼰 건 나였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내가 바보였다는 걸 인정했다. 

이제 스스로에게 허용한 자유, 일탈, 내가 감히 내린 선택들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느꼈다. 내가 밥을 ‘빌’어 먹는 삶을 살지, 밥을 ‘벌’어 먹으며 살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돈을 쓰고 싶지 책이나 읽으며 글을 쓰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관 뚜껑을 닫듯 책을 덮고 서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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