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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Feb 04. 2023

나쁘지 않은 걸로 충분한가? <2021.7.15~31>








내가 어머니의 몸속에 거꾸로 들어있었을 때,

밀려드는 잠을 깨우는 건 꿈이었을거다. 미끄덩한 탯줄을 만지작거리다가 좋은 꿈을 꾸고, 맥박 리듬과 삐걱거리는 뼈 소리를 듣다가 나쁜 꿈을 꿨을거다. 양수가 터지는 그날까지 보이지 않는 운명을 기대하고 걱정하느라 편한 잠을 자지 못했을 거다.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다. 어떤 패를 골랐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이렇게 기대했을거다.

달러의 나라 미국이나, 복지의 나라 노르웨이나,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마라도나와 조던 같은 육체적 재능이나, 쇼팽과 피카소 같은 예술적 재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기업 총수인 부모나, 시선을 끄는 외모나,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두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아마 이렇게 두려워했을거다.

최소한 소말리아의 기근이나, 팔레스타인의 전쟁이나, 콜롬비아의 범죄는 피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거기다 악취나는 위생, 글자마저 포기한 교육의 부재, 쓰레기 같은 형제, 물건을 훔치라고 강요하는 부모는 피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결과는?

긴 시간 두 팔을 가슴에 붙이고 기다린 자궁 밖 세상은 무엇이었나. 음,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민주주의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바로 위에 미사일을 쏘려 하는 형제 국가가 있지만 그 못지않게 국방력도 강하고, 하이에크식 자유주의로 경제가 굴러가지만 동시에 굶어죽지 않을 복지는 챙겨주는 나라였다.     



     

음, 부전승 같은 특혜도 받았다. 

소수자에게 가시밭길인 한국이란 나라에서 나는 비장애인 남성이고, 이성애자에다가, 이민자의 핏줄이 아닌 원주민의 핏줄이다. 음, 어느 정도의 운도 따라줬다. 부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배고픔에 눈이 뒤집히는 빈곤층은 아니었다.         



                 

나도 안다.

많은 현인들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아쉬워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살라”고 말했던 걸 안다. 나도 뉴스를 보며 생각한다. 정크푸드를 먹는다고 투덜거리는 게 불행이 아니라 흙탕물을 빨아 마셔야 하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게 불행이 아니라 부모의 빚쟁이에게 살해 협박을 받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결혼을 포기한 것보다 폭탄에 아이를 잃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재능이 없어서 창작의 고통을 겪는 게 불행이 아니라 암과 백혈병의 고통을 겪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그래서 나도 인정한다.

내가 누구보다는 졸라 운이 좋았다는 걸. 예를들어, 지하철은 탈 수 있는 다리, 책은 읽을 수 있는 지성, 적당한 집, 적당한 건강 등등.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사람 마음은 복잡하고 오만하며 간교하기 짝이 없는 법. 마음 깊은 곳에서 반발했다. “썅, 그런데 나쁘지 않은 걸로 충분한가?" 걸어 다니면 가마 타고 싶고, 가마 타면 마차 타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이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원했다.             




"나쁘지 않은 걸로 충분한가?"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오'. 좀만 더 솔직해지자. 저 때 나는 그들(L과 K)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나쁘지 않음에 불행을 느꼈다. 얄팍한 슬픔에 나 자신을 비극적 인물로 여겼다. 식민지 시대의 청년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죽어갔다지만, 2021년의 나는 부러움 때문에 죽겠다며 징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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