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제 올드스 Olds Feb 20. 2023

거래소 입장 <2021.8>








경제 뉴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시 같았다.

나는 경제를 몰랐다. 경제는 나의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 경제나 재테크 책은 두 권뿐이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비트코인’은 알았다. 인플레이션은 보수가 좌파에게 이 나라를 베네수엘라로 만들 작정이냐고 말할 때 빠지지 않던 단어였으니까. 한편, 당시 비트코인은 개쓰레기 취급을 함께 받으며 지나가는 개도 알 정도로 유명해진 자산이었다. 당시 경제 뉴스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름있는 부자들이 비트코인을 매입했고, 실제로 비트코인이 계속 오르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 상승을 ‘헤지 수요’라 불렀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흥미로웠다.          




시작은 단순했다.

귀뚜라미들이 연주하는 새벽, 혼자 침대에 누워 코인 거래소 앱을 다운로드했고 회원가입을 했다. 왜? 비트코인이 정말로 ‘헤지’ 수단인지 관찰을 좀 해보려고. 마약 밀매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교실 문턱에 서 있는 전학생처럼 쭈뼛대다가 거래소에 입장했다.      



          

비트코인 가격 (출처: 업비트)




그날 본 그래프는 의외였다. 

내가 4-5월에 들었던 소문과 다르게 코인은 인기가 좋았다. 비트코인은 꾸준히 회복해왔고, 이더리움이라는 놈은 더 강하게 회복하고 있었다. 7월에 3500만 원이었던 비트코인은 8월에 5700만 원, 7월에 210만 원이었던 이더리움은 8월에 380만 원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 건 잡코인이었다. 

하루에만 110%, 95% 상승 중이었던 것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도박을 해본 적 없고, 주식 차트도 본 적도 없고, 저금밖에 몰랐으니까. 하루 110%라는 수익과 은행 1년 이자율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이 차이였다. 아,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심장이 뛰며 눈깔이 돌아갔다. 평생에 남을 장면을 본 애처럼. 부모의 방에서 금지되고 쉬쉬되는 행위를 엿보게 된 애처럼.          




망설임은 망상으로 변했다.

재수가 좋다면 나도 두 배, 세 배 벌 수 있다는 망상.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는지! “만약 아침에 이걸 샀으면 10만 원이 20만 원, 1000만 원이면 2000만 원이네?, 세 달 전에 이걸 사고팔고 저걸 샀으면 100만 원이 2억이 됐겠네?”.       



   

그래서 그날, 

달콤한 망상에 허우적대다가 처음 코인을 샀다. 아니,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유혹 때문에. 무섭게 오르는 수익률을 나에게 보여준다는 건 배고픈 토끼 입에 상추를 갖다 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한국의 500만 코인 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해'와 인플레이션 <202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